총각들이 피임약 홍보를 한다. 더군다나 남성용 피임약이 아니라 여성용 먹는 피임약이다. 결혼도 하지않은 남자가 여자를 상대로 성행위와 피임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하려니 웬만큼 낮이 두껍지않고는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처음엔 도대체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돈을 내고 하기도 힘든 일을 돈 벌어가며 했다는 생각에 마음 뿌듯하다고 한다. 성균관대 약대 김수현군(26),중앙대 약대 정영일군(23),경희대 약대 하용화군(21).똑같이 올봄에 4학년으로 올라가는 이들 세사람은 겨울방학 동안 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쉐링의 "다이안느 35 전문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원자의 3분의2이상이 여대생이었지만 이들은 약대생이라면 이런 일도 해보아야한다는 생각에 과감히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다이안느 35"는 쉐링이 개발한 여성용 먹는 피임약.여드름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명에게 주어진 업무는 약국을 경영하는 현직 약사들을 대상으로 여성이 먹는 피임약을 선전하는 일.아무리 "예비 약사"라지만 진땀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다이안느 35"의 성분과 장단점,피임원리 등을 머리속에 일목요연하게 입력시킨 뒤 약국문을 두드리지만 막상 여자 약사와 맞닥트리면 얼굴이 먼저 홍당무가 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각자 담당구역에서 하루에 15군데는 들러야하기 때문에 한곳에 머물수있는 시간은 고작 6~8분에 불과해 처음에는 혼자 쑥스러워하다 나오기 일쑤였다. 셋중 나이가 가장 어리고 얼굴에 "애교스러운" 여드름이 남아있는 하용화군. "한 약사는 저를 보고 대뜸 피임약을 직접 먹어봤느냐고 묻더군요. 본인이 복용도 안해보고 홍보를 하는게 말이 되느냐며 다그치는 겁니다. 너도 여드름이 있으니 한번 먹어보고 효과가 있으면 다시 찾아 오라는 거예요" 순간 당황해서 아무말 못하고 되돌아 나왔지만 "다이안느 35"는 여드름 치료용으로 라도 여성만 복용할 수 있는 약이라 그도 실제 먹어보지는 못했다. 남자가 여성용 피임약을 홍보한다는 게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여성 신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정영일군은 첫마디에 "박카스는 원없이 얻어마셨다"고 했다. "처음에야 뭐 본체만체하며 동냥꾼 취급이었지요. 그래도 한번두번 계속 방문하니까 반겨주더라고요. 따지고 보면 다 저희 선배들 아닙니까. 여성용이라서 그런지 여자약사들이 더 많은 관심을 보이더군요" 정군의 담당구역은 서울시 광진구 일대였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이 지역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한 선배는 제가 들어서자 마자 "힘들지" 하며 냉장고를 열어제치고 색깔 좋을 걸로 골라 먹으라고 하는데 인상에 남더라고요. 선배들의 강권으로 하루에 박카스를 5병이나 마신 적도 있어요" 김수현군은 군복무를 마친 복학생이어서 그런지 그중 어른스러웠다. "약대생인 만큼 특별히 피임약 홍보가 창피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졸업 후를 생각해서도 전공과 연관되는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며 "미래의 약사"다운 태도를 내비췄다.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꼼꼼하게 질문하는 선배 약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제대로 준비를 해갈 필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다이안느 35가 피임과는 별도로 피부를 개선하고 생리주기를 바로 잡는 효과도 낸다"고 지적하며 "실제로 제 누나에게도 써보라고 가져다 준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