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현실.원칙 무시한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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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회사인 A사는 최근 휘발유 운송차량에 표시된 자사 로고를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관할구청에서 로고를 불법 광고물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단속하겠다는 계고장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계고장에는 자진해서 로고를 없애지 않으면 차량 1대당 5백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형사고발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다른 정유업체들도 구청에서 계고장이 날아오면 A사와 공동 보조를 취할 계획이다.
이처럼 휘발유 운송차량에서 회사 로고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은 정부가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의 준비및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조직위원회로 하여금 영업용 화물자동차의 외부광고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만든데서 출발한다.
즉 영업용 화물자동차에 광고를 하려면 조직위에 광고료를 내도록 한 것이다.
정유 운송 택배 식·음료 주류업체 등은 대부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차량을 아웃소싱해 지입제로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업체가 휘발유 운송차량에 자사의 로고를 표시하려면 매월 10만∼15만원의 광고비를 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에 납부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불법이 된다.
정유회사중 가장 규모가 큰 SK㈜의 경우 지입차량과 대리점 운영차량이 2천여대에 이르기 때문에 휘발유 운송차량의 로고를 지우지 않으려면 약 25억원을 내야 한다.
정유업계에서는 그러나 돈을 들여 차량 로고를 지우는 한이 있더라도 부당한 광고비는 납부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아시아경기대회 지원법이 올해까지 한시적으로만 적용되기 때문에 일단 버티고 보자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실제 15∼20여개 업체가 관할 구청으로부터 계고장을 받았지만 단 한곳도 조직위원회에 광고료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는게 광고주협회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광고료를 영업과는 전혀 관계 없는 아시안게임조직위에 내야 한다는 특별법의 논리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업체들이 일부 차량의 로고를 지운 후 내년에 다시 도색을 하고 조직위는 광고료를 받지 못한채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실과 원칙을 무시한 법 적용이 빚어낸 결과다.
김태완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