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제지업체 베이징 주재원인 K씨.그는 요즘 '덤핑'에 매달리고 있다. 중국정부의 한국산 아트지(인쇄용지) 덤핑조사 판정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고,서울로 연락해 관련 자료를 챙기는 등의 일로 하루를 보낸다. 중국으로부터 덤핑혐의 판정을 받은 화학업체 일부 직원들도 귀중한 시간을 덤핑처리로 보내고 있다. 중국의 반덤핑 제소에 관한한 한국은 '봉'이라고 할 만하다. 현재까지 취재된 12건의 덤핑조사 중 10건이 한국기업과 관련돼 있다. 5개 상품이 현재 덤핑 조사를 받고 있다. 왜 그럴까. 일부 상사원들은 "중국이 우리를 우습게 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이라면 그랬겠느냐"고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초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선 업체간 과당경쟁이다. 국내 업체들은 대체시장 개발은 뒤로 하고 중국시장에 물량을 쏟아내고 있다. 같은 한국업체끼리 가격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해마다 대한(對韓)무역적자 '타령'을 하고 있는 중국이 이를 보고만 있을 리 없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제품과의 기술격차 축소다. 기술적 문제로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고 있는 제품에 대해 덤핑의 올가미를 씌울 수는 없다. 그들이 덤핑조사에 나서는 것은 한국제품이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생산·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기업은 한국기업을 걸고 넘어지게 돼 있다. 우리의 대응력에도 문제가 있다. 덤핑조사 착수 정보는 일반적으로 사전에 유출되게 마련이다. 정보를 빼내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업과 통상외교담당자간 협력시스템이 약하다. 일부 상사원들은 "대사관 직원들이 도움을 주기는커녕 관련자료를 제출하라고 아우성"이라고 푸념한다. 대사관 직원들은 "사전에 대비하지 않다가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대사관으로 온다"고 불평한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가입 이후 반덤핑 제소 카드를 통상외교의 최대 무기로 빼들고 있다. 중국의 반덤핑 판정에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에 고심해야 할 때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