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0:44
수정2006.04.02 10:47
뉴욕에 근무하던 1985년 어느 날 현지 신문에 한국인 최초로 '부행장'이 탄생해 교민사회의 영광이라고 대서특필된 적이 있었다.
vice president를 부행장인 줄 알고 일어난 일이었다.
뉴욕의 은행들은 간부명칭을 은행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했다. 이사회의 회장은 chairman,이사는 director로 불렀고, 집행부의 행장은 president, 임원은 vice president 앞에 executive나 senior를 붙여 불렀고,제2인자인 부행장이나 전무는 chief를 또 붙여 chief executive vice president로 불렀다.vice president는 우리의 부장이나 차장에 해당하고,때로는 과장이나 대리까지도 있었다.
사실은 과장급이었는데 "부행장 났다"고 야단이었던 것이다.
미국도 vice president가 '제2인자'인 '부행장'인 때가 있었는데,마케팅을 위해 직명을 자꾸 인플레시키다 보니 대리가 '부행장'까지 돼버린 것이다.
당시 최고집행간부는 chairman과 president를 겸한 chairman & president로 많이 썼고,CEO(Chief executive officer)는 잘 쓰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president도 많아지고 chairman도 여러 명이 되니 '내가 최고집행간부요'하는 뜻에서 chairman & CEO나 president & CEO가 등장했다.
우리의 '대표이사'라고 할 수 있는 CEO가 여럿 있는 경우가 생기고 있으니,CEO 앞에 first나 head를 또 붙일지도 모르겠다.
3월1일부터 상호신용금고가 '상호저축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금고'는 떼었지만 금융감독원이 '예금자 등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글자크기도 동일하게 'OO상호저축은행'으로 하고,대표자의 명칭은 '행장(president)'은 못쓰고 '대표이사(CEO)'로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시'에는 시장,'사'에는 사장,'팀'에는 팀장도 있는데,'상호저축은행'은 '행'인데 '행장'은 안 되고 '행대표이사(?)'만 된다니 무슨 소리인지.
우리의 '상호저축은행'과 비슷한 뉴욕의 Apple Bank for Savings는 Apple Bank만 크게 쓰고 for Savings는 조그마하게 쓴다.
대표자는 Chairman에 President & CEO까지 달고 있는데도 감독당국은 말이 없다.
미국의 예금자는 'for Savings'가 작아도 혼란이 안 되고,한국의 예금자는 '상호저축'이 작으면 혼란이 된다는 말인지.
예금자를 걱정하는 감독원의 충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아무리 생각해도 글자 크기까지 정해주고 대표자 명칭까지 정해주는 것은 재량권을 넘은 행위라 생각된다.
지난번 IMF사태 때 "한국의 금융감독당국은 감독(supervision),규제(regulation),간섭(intervention)을 혼동해 규제를 푼다고 강화해야 할 감독까지 풀고 간섭을 감독인 줄 알고 있다.
규제해야 할 해외 단기차입은 자유화하고,자유화해야 할 장기차입은 규제했다.
글로벌스탠더드에 따라 불필요한 규제와 간섭은 풀고 건전성을 위한 감독은 강화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은 적이 있다.
국민의 자유와 재산에 대한 규제는 법률에 의해야 하고,그 행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가에 의해 행사돼야 하며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는 것이 근대 헌법의 대원칙이다.
금융감독권은 효율성보다 공정성과 엄정성이 더 중시되는 국가의 공권력이다.
금융감독원은 행정관청이 아니라 민간지위의 특수법인이다.
어느 나라에도 행정관청이 아닌 곳에서 공권력인 금융감독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일부 오해가 있는데,영국은 재무부의 금융감독권을 오랫동안 영란은행에 위임하다가 지금은 금융서비스기구(FSA)에 위임해 행사하고 있고,일부 금융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는 의회소속의 연방행정관청이다.
금융감독당국도 해야 할 '감독'과,하지 말아야 할 '간섭'을 확실히 구분해 해야 할 '감독'을 확실히 해야 21세기 지구촌의 무한경쟁에서 이기는 길이다.
글자가 작아서 혼란 될 예금자도 많지 않겠지만,적절한 범위의 시민책임은 지우는 것이 과도한 행정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과도기적으로 설립된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예금자 등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상호저축은행의 간판이나 대표자 명칭을 걱정하기 전에 스스로부터 행정관청으로 개편돼야 한다.
mskang36@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