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사랑 방정식' .. 이미연 감독 데뷔작 '버스,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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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어른들은 고루하거나 타락했고,유치하거나 속물적이다.
고단한 인생살이에서 본질을 망각한채 현상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적어도 미디어에 투영된 대다수 어른들의 초상은 이렇다.
어른됨에 대한 환멸은 순수를 지키려는 열정과도 상통한다.
사랑에 임해서도 나이 재산 학벌 등 "부대조건"에 한눈팔지 않고 "진정한 마음"을 향해 곧장 달려가도록 이끈다.
영화 "버스,정류장"은 어른세계를 혐오하는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다.
32살의 국어선생 재섭과 17살의 학생 소희가 세대차와 신분차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 세심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포착된다.
도입부 국어강의 장면은 재섭의 냉소적인 시각을 짐작케 한다.
"춘향의 절개는 과거급제한 이몽룡을 사로잡아 신분상승하려는 행위다.요즘 여자들이 "사"자 신랑감을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보습학원 강사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는 냉소와 무례함으로 자신에 대한 불신감을 감추는 인물이다.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으며 직장 동료들과도 섞이지 못한다.
직장일과 주식 부동산을 화제삼는 "어른세상"과 쉽게 친해질 수 없다.
이따금 찾는 창녀와 삐삐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학생들은 그를 "은따"(왕따 당하는 본인이 이를 모를 때)로 부른다.
소희는 재섭의 이런 "어른답지 않은" 면모에 호기심을 갖고 다가선다.
그녀는 어른세상의 구린내를 너무 일찍 알아 버렸다.
인터넷시대의 새풍속도 "원조교제"에 빠져 임신과 낙태를 경험했다.
사랑을 속삭이는 "아저씨의 밀어"가 그저 육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혹독한 대가를 치른뒤에 알았다.
소희는 "진실은 거짓이고,일상도 거짓"이란 신념을 갖게 됐고 세상에 대한 경계심도 강화됐다.
다이어트를 위해 음식을 절제해야 하는 장면에서도 "방심하면 안돼.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야"라고 말할 정도다.
같은 동네에 사는 두 사람은 버스정류장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한다.
그들의 관계도 "평행선"에서 "교차선"으로 이동한다.
버스정류장은 쉼터와 안식처의 상징이다.
제목 한 가운데에 쉼표를 넣은 것도 "안식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 정류장에 자주 내리는 빗발은 정염을 씻어내는 의식이다.
이로써 자괴감 깊은 삼류인생과 상처입은 어린 여심이 함께 설 공간이 마련된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심약한 사병역을 해냈던 김태우는 재섭의 폐쇄적이면서도 독설가다운 면모를 살려냈다.
소희역을 맡은 아역탤런트 출신의 김민정은 풍부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과잉연기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드라마의 흐름이 지나치게 대사에 의존하고 있어 감정의 진폭은 약하다.
극중인물의 감정흐름도 때로는 끊어진다.
배경에 깔린 인디가수 루시드 폴의 모던록 음악은 호소력이 크다.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사운드트랙 앨범이 8천장이나 판매됐다.
이미연 감독의 데뷔작.
8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