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전문기자의 '세계경제 리뷰'] 참여경제학자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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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프린스턴대 교수로 주 2회 뉴욕타임스에 고정칼럼을 쓰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중 하나다.
그의 펜이 건드리지 못하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그는 박학다식하다.
미국경제 현안,일본의 장기불황,아르헨티나 경제위기,아시아경제상태,국제환율등 세상의 복잡한 경제현상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재단되고 요리된다.
3년전쯤 그는 한 영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말을 했다.
"케인스가 부럽다"는 것이었다.
그 신문에 실린 인터뷰기사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시대를 잘 만나 위대한 경제학자가 됐다.
1930년대의 대공황 덕에 그는 자신의 능력과 이론을 세상에 펼쳐볼 기회를 얻어 명성을 날릴 수 있었다.
만일 당시 세계경제가 잘 나갔다면 경제학사에 케인스라는 이름이 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얘기의 핵심은 명확하다.
세상경제가 곤경에 처하면 자신도 케인스 못지 않은 활약을 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인터뷰를 한 1990년대말은 미국경제의 황금기였다.
신경제로 불릴 정도로 경제가 너무 좋아 자신의 경륜을 세상에 펼쳐볼 기회를 갖지 못해 안타깝다는 뜻이 그 인터뷰기사에 녹아 있었다.
그는 현실경제에 대한 뜨거운 애정으로 신문과 잡지에 수많은 칼럼을 쓰고 기삿거리를 제공해 왔다.
그 덕에 기업들이 탐내는 '스타 경제학자'가 됐다.
초대형 에너지회사 엔론이 지난 99년 그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것도 그가 스타경제학자이기 때문이었다.
그해 그는 자문위원비로 5만달러를 받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경영전문지 포천에 '엔론은 훌륭한 회사'라는 요지의 글을 썼다.
'훌륭한' 엔론은 그러나 분식회계를 일삼다 작년말 파산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할 정도로 뛰어난 경제학자다.
하지만 그의 엔론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진 후 권위와 명성을 잃었다.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계속 쓰고 있지만 그의 칼럼을 인용하거나 보도하는 신문과 방송은 이제 거의 없다.
앞으로 노벨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상아탑속에만 머물기를 거부한 현실 참여경제학자의 과욕이 빚어낸 서글픈 결말이다.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