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짧다. 배우고 느끼고 즐겨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꽉 짜여진 일상의 번잡함과 분주함을 벗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생활의 무게를 벗어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생활의 리듬을 찾고 원기를 회복하는 한가지 방법은 깔끔한 그림이 있는 책을 보는 것이다. 보는 것 반,읽는 것 반으로 즐길 수 있다면 더 좋다. 이같은 우리의 욕구를 꽉 채워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주헌씨의 "프랑스 미술기행"(중앙 M&B)이다. 보통 사람들이 프랑스의 곳곳을 누비기는 어렵다. 그리고 예술이 주는 아름다움은 아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권으로 예술,교양 그리고 역사를 함께 가질 수 있다. 단아한 문체,깔끔한 그림,풍부한 지식이 어우러진 이 책이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지"의 고향에 남겨진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패배에 뒤따르는 시민들의 몰살이란 위험에 맞서 가장 부유한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는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다. "죽음을 각오한 자는 영원이 살리라"는 경구를 떠올리게 된다. 세월과 함께 모든 것은 잊혀졌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영원히 후인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인상주의 화가 가운데서도 유독 연못 속의 수련을 그리는데 열중했던 모네는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세계의 본질을 포착하려고 했다. 지금은 콩테 미술관으로 변한 아름다운 콩데 성의 마지막 소유자 앙리 도를레앙 공작은 "나는 내 아내와 여섯 자녀를 잃었습니다. 내가 사랑할 것이라고는 오직 이 나라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절규한다. 부귀영화를 누릴지라도 어느 누가 운명의 거친 물살을 피해갈 수가 있겠는가. 위대한 인간은 바로 겸손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밀레는 죽는 날까지 바르비종에 머물면서 농민들을 그렸다. 후인들은 그를 두고 "밀레의 독창성은 결코 결합할 수 없는 두가지를 합한 데 있다. 바로 화가와 철학자이다"라고 말한다. 이주헌의 책에는 로댕,모네,마티스,밀레,고흐,고갱 등 우리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과 박물관,작가의 애정 어린 해설,게다가 필력까지 겹쳐져 있어 그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주말 오후,당신이 어디든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 푹 빠져서 프랑스의 이곳 저곳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새 서울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공병호 경영연구소장 gong@g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