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문단에 시집이 풍성하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의 "나무"(창작과비평사)에 이어 장석주씨의 "물은 천개의 눈동자를 가졌다"(그림같은세상),유자효씨의 "금지된 장난"(포엠토피아)이 잇달아 나왔다. 김용택씨의 시편들은 전원의 삶에서 피워올린 서정과 자연의 감성으로 환하게 빛난다.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다시 봄이었어/나,그 나무에 기대앉아 있었지//그냥./있었어"("나무"부분) 그는 "잠시 놀러와서 빌려 사는 세상의 집들이 내가 살기엔 너무 크지 않느냐"며 "강 건너 밭을 다 갈아엎은 아버지"가 "쟁기 지고 큰 소를 앞세우고 강을 건너 돌아"오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눈물겨운 현실의 아픔 또한 그를 울린다. "가난은 아름다웠지만/귀향은 치욕이다"("1998년,귀향").경제위기로 설 자리를 잃은 실업자,노숙자와 그들의 슬픈 귀향이 시인의 가슴을 친다. 그러면서 그는 "돌아온 자들은떠났던 자들이니" "찬 술로 세상에 설 뿐"이라고 다시 일으켜 세운다. 김씨는 교원 정규인사에 따라 5년간 몸담았던 전북 임실군 운암면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의 생활을 마감하고 새 학기부터 임실군 덕치면 덕치초등학교로 옮겼다. 그는 섬진강에 적성댐 건설이 강행되면 모교인 덕치초등학교와 자신의 집도 물에 잠긴다며 댐 건설 저지에 앞장서고 있다. 장석주씨의 시집은 더욱 깊어진 서정시의 미학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태 전부터 경기도 안성 호숫가에 "수졸재"라는 집필실을 마련하고 책읽기와 시쓰기에 몰입하고 있는 그가 "고요한 숲속에서의 기다림"처럼 그윽한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마음에 하현달 하나 품고 들어온/나는 장기수배자다/물의 이 둥근 쉼표 속에/은신 중이다//이 물의 정거장 부근을 오래 서성이며/생각해보면 문제는 삶이다/얼마나 잘 살았느냐가 아니라/얼마나 잘못 살지 않았느냐가 문제다"("물의 이 둥근 쉼표 속에서"부분) 얼마 전 부친상을 당한 그는 "길 떠나신 아버지"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백 일 하고도 열닷새 되는 날,/안성 천변 묘목시장에서 사다 심은 어린 대추나무에/새 잎이 돋아난다"고 썼다. 그러다가 어느날은 "타오르는 햇빛 속에서 분신중인/저 대추나무는/머지않아 온몸으로 붉은 사리를 받아내리라"("대추나무")고 우주의 틈새를 들여다본다. 시인 이문재씨는 이번 시집을 두고 "진경산수의 화법을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지난 가을에 내놓은 산문집 "추억의 속도"와 함께 읽으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유자효씨의 신작시는 현실에 좀더 가까이 닿아있다. SBS라디오본부장이라는 직함이 그의 눈길을 보다 예리하게 비추는 까닭일까.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10층에 도달할 때까지 결정해야 한다"("광속시대")거나 "IMF에 얻어 맞은 내 매제는 죽고/누이는 남매만 끌어안은 채/길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한국 2000년.3")고 한다. 빈부격차로 인한 고통과 일그러진 사회상을 질타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과 존재의 근본을 진지하게 살피는 그의 눈은 부드럽다. "나를 사랑하는 너를/사랑하지 못하고,/천박한 지식 때문에/죄를 뿌리고,/세상의 많은 욕심 가운데/하나가 되었으니/용서해다오//용서해다오/꿈같이 걸어온 시간들에 그늘이 지니/독초같은 나의 삶을/용서해다오"("용서해다오"전문)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