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케 유타카 일본 전농회장이 지난 6일 사임의사를 밝혔다. 임기만료(7월말)를 4개월여 남기고 택한 중도하차다. 일본 최대의 농민단체를 이끌며 무너져 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던 그가 불명예 퇴진의 덫에 걸린 원인은 단 한가지였다. 소비자들을 기만한 자회사의 부도덕 행위였다. 전농의 자회사인 전농치킨은 광우병 파동으로 일본국민들이 너도 나도 닭고기로 몰린 작년 가을 값싼 수입육을 일본산으로 속여 판게 들통났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항생물질을 먹이지 않고 키운 무공해 닭고기에다 일반 닭고기를 섞어 판 사실도 꼬리가 잡혔다. 전농치킨의 닭고기 진열대는 고객 발길이 하루아침에 뚝 끊겼다.백화점·슈퍼마켓들은 앞다퉈 거래를 끊고,매장에서 전농치킨의 이름 넉자를 지워버리고 있다. 오이케 회장의 하차는 자회사의 파렴치한 행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전농에까지 번질 파문을 조기 차단하려는 고육책인 셈이다. 전농치킨 사건은 동기와 수법,그리고 파문이 유키지루시식품의 수입쇠고기 위장사건을 빼다 박았다. 도덕불감증이나,모회사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안긴 것 등이 모두 똑같다. 일본기업과 상인들이 자랑해온 최고의 덕목은 '신용'과 '정직'.그러나 불행히도 일본사회에는 이 가치를 비웃는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다. 문제는 기업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권이건,정부부처건,금융업계건 불신의 수렁으로 빨려들어가 있다. 나라의 내일을 믿을 수 없으니 국민들은 불안하다며 돈을 쓰지않는다. 은행을 못믿으니 부자들은 돈 맡길 곳을 찾느라 전전긍긍한다. 금고와 금괴가 불티나게 팔리는 현실도 따지고 보면 제도권 금융에 대한 불신이 빚어낸 반사현상이다. 프란시스 후쿠야마 미국 메이슨대 교수는 한·중·일 3개국 차이중 하나가 '신뢰'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이 한국 중국보다 앞서 있으면서 국가시스템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사회적 신뢰가 튼튼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기업들의 사기행각과 귀금속 사재기 인파는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이라고 보기 힘들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