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율 코어세스 사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조정일 케이비테크놀로지 사장, 변대규 휴맥스 사장. 주력 사업은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첨단 기술로 신화를 창조한 벤처기업인이란 점이다. 고통스러운 시기를 견뎌내고 마른 땅에서 싹을 돋운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다. 한우물을 파며 정도(正道)를 걷고 있는 기업이 대부분인데도 각종 게이트로 인해 벤처업계 전체가 비리의 온상으로 매도되는 걸 우려하는 벤처기업인들이 많다. 이들은 한결같이 "벤처는 여전히 한국 경제발전의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벤처 신화는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위성방송수신기 제조업체인 휴맥스는 1997년에는 시장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기업이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휴맥스는 유럽의 유통시장을 겨냥해 마케팅을 펼쳐 당당히 스타기업 반열에 올랐다. 수출업체인 이회사의 올해 매출 목표는 5천억원. 4년전 9억8천만원에 불과하던 휴맥스의 시가 총액은 현재 1조3천억원이 넘는다. 변 사장은 "대박이라는 허상을 좇지않고 기업이 나아갈 길을 걸어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벤처와 관련된 각종 게이트가 불거짐에 따라 오히려 벤처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져 벤처신화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리니지게임으로 세계를 휩쓸고 있는 엔씨소프트의 김 사장은 벤처 신화를 수치로 잘 보여준다. 그의 보유주식 총액은 현재 3천억원 가량. 개인으로는 국내 8위다. 온라인 게임 하나로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 남들이 게임으로 무슨 돈을 벌수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던 그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코어세스는 서울 테헤란밸리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중인 기업이다. 벤처 신화의 상징이었던 메디슨 빌딩을 사들여 지난달 입주했다. 비록 메디슨은 무너졌지만 코어세스가 그 신화를 이어갈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코어세스는 지난해 일본 소프트뱅크에 초고속 인터넷용 ADSL장비 2억달러어치를 팔며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설립된지 불과 5년째인 올해 매출 목표는 5천5백50억원이다. 하정율 사장은 "벤처는 원칙과 성실로 무장해야 글로벌기업과 승부할 수 있다"며 "벤처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룰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벤처로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자화폐 업체인 케이비테크놀로지는 회사 설립 3년만에 매출 3백13억원과 순이익 6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매출과 순이익을 두배로 높여 잡았다. 오로지 기술만 보고 달려와 거둔 열매다. 이 회사는 설립 3년만인 지난해 10월 코스닥에 입성했다. 조 사장은 "벤처기업은 시장을 뒤쫓아가서는 성공할 수 없으며 시장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벤처기업을 둘러싼 각종 규제완화 등 주변 인프라가 정리돼야 벤처신화가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