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중 빚이 전혀 없는 무차입 기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시가총액 5백억원 이상인 기업중 65개사가 이미 무차입 경영에 들어갔고 연말까지는 70개사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이처럼 무차입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 기업들의 고질적인 병폐로 여겨져 왔던 차입을 통한 외형위주의 경영에서 내실경영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일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경기가 급속히 되살아나고 있는데도 무차입 기업이 늘어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의 피나는 재무구조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30%가 넘는다는 점에서 부채를 지속적으로 줄여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무차입 기업의 대부분이 수익성이 좋고 빚 걱정이 없는 우량기업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우량기업들이 손비처리가 가능한 적정한 차입을 마다하고 현금보유를 늘리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기회복 전망이 불투명했다는 점에서 기업입장에서는 현금흐름 위주의 안정경영이 상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고 있는데도 이런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경기외적인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이 잔뜩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재무구조 개선 위주의 구조조정으로 과잉설비는 여전하고, 그렇다고 마땅한 신규 투자처가 있는 것도 아닌 작금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고 봐야 한다. 이는 무차입 기업들의 대부분이 외환위기 과정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은 구 경제권에 속해 있고,내수시장 점유율이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각종 규제를 현재 상황에 맞게 완화해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출자총액 규제는 폐지돼야 마땅하다. 아울러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기업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무차입 경영과 같은 축소지향적 경영에 안주하다가는 현재의 시장지위가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영업이익으로 현금만 잔뜩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기업의 미래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