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창업투자는 얼마전 한 IT(정보기술) 기업에 1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가 투자계약서에 서명하기 직전 이를 전격 철회했다. 최대주주의 해이한 도덕의식 때문이었다. 김주원 동업창업투자 대표의 설명. "서명을 하려고 마지막으로 회사현황 자료를 봤는데 갑자기 지분이 바뀐게 발견됐다. 사유를 캐보니 향후 코스닥 등록에 대비해 최대주주가 주식파킹(본인 지분을 제3자에게 일시적으로 맡겨두는 것)을 한 것이었다. 벤처본연의 업무보다 잿밥에만 관심있는 기업에 차마 투자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사례. 인터넷 솔루션업체인 H기업은 작년초부터 잇따라 대형 수주건을 발표해 매출과 이익을 부풀린 뒤 D증권사와 엔젤들로부터 20억원을 투자받았다. 2002년중엔 코스닥에 등록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최대주주인 K모 사장은 미국으로 떠날 준비만 해왔다.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투자금을 영업자금 명목으로 미국으로 빼돌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회사는 요즘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돌려 달라'는 요구를 받으며 존폐기로에 섰다. 잇단 비리로 벤처업계에 곱지 않은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일부 벤처기업인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이처럼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벤처기업인 10명중 1,2명은 거의 사기꾼'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모험정신이 살아있는 상당수 벤처기업인들을 중심으로 도덕재무장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벤처게이트가 더 쌓여갈수록 '벤처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이들의 각오는 더욱 단단해지는 모습이다.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벤처기업협회장)은 올들어 외부강연이나 행사 참석을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 이곳저곳 불려다니다 보니 정작 본업을 소홀히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벤처기업협회는 그의 이런 입장을 감안, 협회장으로서의 대외적인 업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상근부회장을 두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벤처리더스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변대규 휴맥스 사장도 최근 "회장 업무로 인해 회사일에 차질이 생길 때엔 언제라도 회장자리를 그만두겠다"며 직원들에게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대덕밸리에선 '몰라서 저지르는 잘못'을 없애기 위해 벤처기업들 사이에 배우기 열풍이 뜨겁다. 지난달 27일에는 모의주총이 열렸다. 대덕넷의 유상연 팀장은 "당초 30명의 기업인들이 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두배 이상이 참석했다"며 "법령과 정관에 의한 주총 모습을 재현하는 등 주총과 관련해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부분에 관한 토론이 활발했다"고 소개했다. 또 대덕밸리 CFO(재무담당 최고임원) 모임을 결성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정보교류를 통해 회계처리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13일엔 벤처기업인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클린벤처' 선언식을 갖고 △투명경영 △끊임없는 혁신 △기술개발 박차 등을 결의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모두 '본연의 일에 충실하자'는 맥락과 닿아 있다. 일에만 전념할 경우 다른 곳에 한눈을 팔 수 없기 때문이다. 벤처신화를 일궜던 메디슨이 부도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맞게된 것도 본업과는 다른 사업을 많이 한 탓이라는게 벤처기업인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벤처캐피털협회장인 김영준 LG벤처투자 사장은 "벤처기업인은 회사업무에만 1백% 전력투구해도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기 힘들다"며 "투자기업 사장들에게 세상에 조금 알려졌다고 해서 절대 외부강연 다니지 말라고 충고한다"고 말했다. 이성태 기자 ste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