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노동문제 왜 꼬이는가..林鍾哲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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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명예교수 / 경제학 >
최근의 노조투쟁 양상이 군사정권 때 모습으로 회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요인은 첫째,현정권도 사·정(使·政)의 뿌리깊은 반노동적 편견을 없애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반노동적 편견은 사보다도 정이 더 심해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크고,노동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노(勞)와 한때 동지였던 김대중 대통령 정권하에서도 편견이 계속되는 것은 김 대통령이 노를 집권수단으로만 이용하고,집권 후 권력기반은 재벌과 특히 관료에 둔 때문이다.
통계가 증명하듯 재벌·정부는 비대해진 반면,저소득층인 노가 얻은 것이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지금같은 노사정 갈등은 그 당연한 결과다.
둘째,노동관계 고위공직 인사가 적절치 못했다.
노사정위원장으로 노사가 신뢰·존경하는 노동전문가나 경제·경영학자가 임명된 일이 한번도 없고,정이 믿는 사람만 앉혔다.
1기 노사정위의 자칭성공은 노사정이 대승적 견지에서 협조하자는 총론문제였으므로 문외한인 정치인도 가능했다.
그러나 2기 이후는 노사정간 이익이 첨예하게 맞서는 각론을 다뤄야 하므로 상임위원뿐 아니라 위원장도 노동경제학·노사관계론에 조예가 깊고 노사가 신뢰하는 인물이어야 했다.
그런데도 정이 신뢰하는 비전문가가 계속 자리를 맡으니 일이 풀릴 수가 없다.
장관 역시 마찬가지로 노동경제학·노사관계론·노동법 중 어느 하나에 전문가적 지식이 있고,타분야에도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적 식견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최근의 가장 큰 실패는 노동운동출신을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사는 당연히 경계할 것이고,노는 당연히 과잉기대를 할 것이다.
장관 자신은 공사(公社)의 민영화같이 제힘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정부입장 때문에 운신의 여지가 없다.
다음으로 큰 요인은 노사정 협조에 대한 비전과 원칙이 이 정권에 없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어렵사리 성립시킨 무노동무임금 원칙 적용 등을 연기한 것이다.
이것이 국민의 정부가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노동시장에서 붕괴시킨 근본요인이다.
시장원리란,반대급부는 급부를 받은 사람에게서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조전임자의 경우 반대급부는 급부를 받은 노조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사용자로부터 받는다.
이렇게 되면 노동시장은 시장이 아니라 노예시장이 되고 만다.
노예만이 시간단위로 계산되는 급부·반대급부 관계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무노동무임금 원칙의 붕괴는 파업노동자에게도 사후적으로 어떤 명목으로든 임금이 지급되던 폐단을 청산하지 못하게 했다.
노사간 이해조절이 협상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노는 파업,사는 공장폐쇄를 통해 협상력의 변화를 유발하고 변화된 새 조건하에서 합의 보는 것이 노동시장의 민주주의다.
셋째,단체교섭때 의제(agenda)와 비의제(non-agenda)를 구별 못하는 사·정의 퇴보성,노의 과격성이다.
단체교섭사가 증명하듯 의제는 항시 변해 왔다.
크게 구분할 때 초기의 이익분쟁 중심적 의제가 후기에는 권리분쟁적 의제로 변해왔고,그것을 가장 성공적으로 해결한 것이 유럽의 경영참가·공동결정·노사정 협조주의(neo-corporatism)이다.
선진국은 오랜 산업발전기간 때문에 의제가 차례로 바뀌어 그런대로 갈등을 풀어갔다.
반면 한국경제는 산업발전이 급속함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성격을 달리하는 두 의제를 함께 풀어야 하는데 노사정 모두가 비의제까지 협상테이블로 올린다.
노가 적법절차를 거친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의제로 삼는 것이나,사가 권리분쟁적 의제상정을 거부하는 것이나,정이 걸핏하면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이나 모두 형태만 다를 뿐 비의제를 의제로 삼으려는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노사정이 의제에 합의를 못 보면 노동법원이,노동법원이 없는 한국에서는 노사정위원회가 큰 틀을,노동위원회가 구체적인 것을 정해줘야 하는데,노사정위는 그 일을 할만한 사람을 위원장으로 모신 적이 없다.
이런 여건하에서 노사가 화합·협력하고 노사정 협조주의가 창조된다는 것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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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