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왜 강한가] (3) '작전 지휘' 구조조정본부..투명경영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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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6년 하반기 반도체 경기가 한창 고꾸라들던 시절.
삼성전자에 초비상이 걸렸다.
월간 단위 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1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삼성의 간판 기업격인 삼성전자의 적자는 그룹 전체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될 줄이야….
이때 삼성전자를 위기에서 건져낸 곳이 바로 이학수 본부장(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으로 대표되는 그룹 구조조정본부다.
삼성전자가 오늘처럼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된 데는 최고경영진의 역할도 컸지만 구조본이 그에 못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비서실 후신인 구조본은 '선단식 경영을 해체하라'는 국민의 정부 압력과,'왜 내가 회사를 나가야 하느냐'는 임직원들의 원성을 들어가며 강도높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삼성전자가 세계 일류기업 반열에 오르게 한 숨은 공신이다.
◇삼성 경영의 삼각편대=삼성전자의 경쟁력은 △경영 방향과 전략을 제시하는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이 회장과 삼성전자 경영진이 경영판단을 하도록 돕는 구조본과 △실제 경영을 지휘하는 전자 경영진이 양축을 이루는 '트라이앵글(삼각) 구조'에서 나온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 진출이나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통신의 통합(1988년),월드 베스트 제품 육성 등 굵직굵직한 방향을 제시한다.
구조본은 싱크탱크 집단인 삼성경제연구소와 협력해 전체적인 지도(미래 전략)를 그리는 '패스 파인더(Path Finder·길안내)' 역할을 한다.
경영환경이 급변할 때 조기에 경보를 울려주는 '조기경보기'와 여러 계열사 경영을 조정하는 '관제팀' 역할도 맡는다.
전자 경영진들은 구조본의 조언을 참고해 실제 경영전략과 전술을 짠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산업경제학)는 "삼각편대식 경영은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해 삼성전자 경쟁력을 높여준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사령탑=구조조정이 없었다면 삼성전자가 90년대 중반의 혹독한 반도체 불경기를 이겨내고 매년 조 단위의 순이익을 내는 일류기업으로 성장하기는 불가능했다.
구조본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어떤 여건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냈다.
이 본부장은 지난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구조조정 결과 계열사 전체로 항시 5조원 이상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의 세부 계획과 방법은 삼성전자에서 만들었지만 기본방향은 구조본에서 제시했다.
경제 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하반기 삼성전자는 추가 인력감축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이미 한 차례 인력축소와 부실사업 철수를 단행했었지만 구조본은 위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몸집을 더 줄이도록 독려했다.
전자 경영진 입장에선 한 해에 두 차례나 인원을 줄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구조본은 이 회장의 신임을 배경으로 초고강도 구조조정을 밀고 나갔다.
전자는 대대적인 분사와 매각을 단행해 결국 4만7천명의 인력을 3만8천여명으로 줄였다.
이런 군살빼기는 그후 휴대폰 및 반도체 영업 호조와 어우러져 삼성전자가 매년 엄청난 순이익을 내는 원동력이 됐다.
이 본부장과 김인주 재무팀장 등 구조본 재무팀 핵심 라인이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구조본 이순동 부사장(홍보팀장)은 "93년 이 회장 주도로 신경영이 도입된 이후 '변해야 산다'는 의식이 임직원 머리에 각인됐으며 이런 의식 변화가 구조조정이 성공한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시스템을 만든다=삼성전자 협력업체인 S사 K사장은 "삼성과 거래할 때 뇌물이나 향응제공 등 부조리는 꿈도 꾸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만큼 경영이 투명하다는 얘기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삼성전자엔 노조도 없다.
'비노조 경영'은 삼성의 오랜 전통이다.
적지 않은 대기업들이 임직원 비리나 노조로 골치를 썩히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구조본에서 만들어내고 관계사에 전파해 제도화한 것들이다.
구조본의 감사가 추상같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영진단팀은 필요한 경우 계열사 해외법인까지 몇달이고 감사를 벌여 비리를 찾아낸다.
비리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날로 사표다.
이런 시스템은 삼성전자의 경영투명성을 높였다.
비리는 결국 원가 부담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고객들에게 최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만든다는 인식을 전 계열사에 확고하게 심어놨다.
경영진단팀은 업무 프로세스 위주의 감사를 통해 계열사의 문제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노사문제도 마찬가지다.
일한 만큼 보상하는 연봉제,경영성과가 일정 수준 이상일 때 주는 성과급제(PI),경영목표를 정하고 이보다 더 이익이 났을 경우 이를 나눠주는 이익배분제(PS),우수 경영 인력을 대상으로 한 스톡옵션제 등은 대부분 삼성 구조본 재무팀이 주축이 돼 국내에서 가?먼저 도입,노사안정에 기여한 것들이다.
인사팀은 계열사 전무 이상급을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한다.
지연 혈연이 발을 못붙이도록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CEO 평가를 이익과 EVA(경제적부가가치),주가상승률 등 실적에 따라 이뤄지도록 시스템화했다.
"삼성의 CEO는 할 만한 사람이 한다"는 세간의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략적 경영 지원=휴대폰이 삼성전자에 떼돈을 벌어주는 '캐시 카우(cash cow)'로 등장한 데는 구조본의 보이지 않는 뒷받침이 있었다.
96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된 이 회장은 올림픽을 활용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삼성의 전자제품이 품질면에서는 일본제품과 대등하면서도 '월드 베스트'에 오르지 못하자 올림픽을 싸구려 이미지 벗기에 활용해보자는 발상이었다.
구조본 홍보팀은 많은 노력 끝에 11개 업체로 정해졌던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공식후원업체에 삼성전자를 끼워넣는 데 성공했다.
삼성이 일류 브랜드로 인정받는 계기는 이때 만들어졌다.
이후 삼성전자는 시드니(2000년 하계) 솔트레이크(2002년 동계) 올림픽에도 공식후원업체로 참여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였다.
비즈니스 위크지는 1999년 세계 75위권 이하였던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가 지난해 42위(64억달러)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구조본은 또 매주 수요일 사장단 간담회와 월 2회 그룹 구조조정위원회 회의를 열어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1991년 TFT-LCD(초박막 액정표시장치)사업을 어디서 하느냐를 둘러싸고 삼성전자와 삼성전관(현 삼성SDI)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을 때 이를 삼성전자로 교통정리해준 곳도 바로 구조본이다.
구조본은 계열사간 사업영역 조정에도 간여해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시너지 효과를 높일수 있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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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이봉구 산업담당부국장(팀장), 강현철, 이익원, 조주현, 김성택, 이심기, 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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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이 시리즈는 앞으로 매주 월.목요일자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