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2 11:11
수정2006.04.02 11:14
스파이들은 "절대 져서는 안될 게임"을 벌인다.
한번의 실수는 영원한 파멸이다.
컴퓨터시대에 풍미하는 소위 "리셋증후군"이 그들에겐 먹히지 않는다.
극도의 긴장과 강박의 환경에선 비정(非情)과 냉혹한 인간성으로 무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첩보영화 "스파이게임"은 차가운 관계의 틈새를 비집고 나온 우정의 싹을 포착하고 있다.
"탑건" "크림슨타이드" 등을 연출했던 토니 스콧 감독이 냉전시대의 첩보전을 생동감있는 액션물로 만들어 냈다.
주인공 스파이역에 60대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30대의 브래드 피트란 두 스타를 내세웠다.
영화는 구소련붕괴로 냉전구도가 해체됐던 1991년부터 베트남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미국중앙정보국(CIA) 소속 두 요원의 애증사를 다룬다.
91년 정년 퇴임을 하루 앞둔 CIA 요원 나단 뮈어(로버트 레드포드)는 그의 부하 톰 비숍(브래드 피트)이 중국 쑤차오 감옥에서 스파이혐의로 체포됐다는 급보를 듣는다.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임박했고 비숍은 다른 작전중 무단이탈 했다가 붙잡힌 상황이다.
CIA 간부들은 비숍을 중국에 넘겨 사건을 그대로 무마시킬 내부 방침을 정하고 비숍의 약점을 알아내기 위해 뮈어로부터 그의 행적을 듣는다.
뮈어와 비숍의 관계는 베트남,베를린,베이루트 등에서 펼친 세가지 작전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상관 뮈어와 부하 비숍은 대조적인 성격으로 나타난다.
비숍은 베트남전에서 전우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베를린에서는 미끼로 사용된 첩자의 목숨을 구하려 하고,베이루트에서는 이슬람과격단체의 지원을 받는 여성을 사랑한다.
이런 성정은 임무완수의 방해물들을 가차없이 잘라내는 뮈어와 때때로 충돌한다.
비숍의 애인도 그로부터 강제로 떼놓아 중국의 감옥으로 넘긴다.
그러나 비숍이 그녀를 구출하려다 붙잡힌 것을 알게 된 뮈어는 마침내 조직의 뜻을 거역하고 구출작전을 펼친다.
인간의 존엄이 국가보다 앞선다는 모럴을 비숍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3가지 작전 장면은 동서 냉전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러나 드라마의 긴장과 흥분이 고조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도 한다.
뮈어는 탁월한 기억과 관찰을 바탕으로 탐구하는 지성적 스파이란 점에서 머리보다 행동을 앞세우는 만화적 스파이 제임스 본드와 차별화된다.
항상 비밀을 간직한 듯한 레드포드의 이미지가 스파이상에 부합된다.
피트는 반항아적인 면모로 비숍의 인간미를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토니 스콧 감독은 광고연출가 출신답게 감각적이고 재빠른 장면전환으로 화면에 속도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영화 "블랙호크다운"을 감독한 그의 형 리들리 스콧처럼 대담한 화면을 창조하는데는 역부족이다.
26년간의 시차를 오가는 레드포드의 분장술에는 헐리우드의 첨단기술이 엿보이지 않는다.
뮈어의 전화 한통으로 중국 감옥을 뚫고 작전을 성공리에 마치는 CIA의 "초능력"에도 의문부호는 붙는다.
15일 개봉.
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