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韓末 망명과 脫北 사태..朴星 來 <한국외대 과학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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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스페인대사관에 피신했던 탈북동포들이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왔다.
외국공관으로 몸을 피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는 일이 얼마나 극한적 상황일까를 생각하면 1세기 전 우리 선조들이 떠오른다.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김옥균 등은 일본영사관으로 피신해 일본에 망명했다.
1896년에는 조선의 임금 고종이 왕실을 서울 정동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겨 가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 뒤 또 몇사람이 일본공관을 거쳐 일본에 망명했다.
그 때의 망명자 한사람이 39세의 우범선(禹範善)이다.
그의 이름이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그의 아들은 바로 한국사에 길이 남을 농학자 우장춘(禹長春·1898∼1959)이다.
과학기술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해방 직후의 이 땅에 그는 귀국해서 농학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은 왜 그가 편히 살 수 있는 일본을 떠나 한국에 돌아와 고생하다 죽어갔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그는 아버지에 대한 참회 때문에 고생을 무릅쓰고 1950년 3월 한국에 돌아온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1895년 일본 낭인(浪人=정치 깡패)들이 민비를 살해해 불태운 참혹한 사건 '을미(乙未)사변'이 벌어졌을 때,조선군의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일본인들과 협조해 왕비 시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직접 왕비를 살해하고 또 불태운 것은 일본 낭인들이었지만,그 시신을 수습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바로 우범선이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당연히 그는 조선 왕실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였고,일본세력이 약화되자 일본에 망명했다.
일본에 간 그는 일본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그 첫 아들이 바로 우장춘,그리고 유복자를 두고 자객 고영근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1903년 11월24일의 일이었다.
우장춘 형제를 위해 그의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했고,또 어떤 고초 끝에 도쿄대학에 진학해 농학박사 학위를 받게 됐는지는 많이 소개돼 있다.
그런데 우범선을 죽인 고영근은 같은 개화파의 동지였다.
서로 잘 아는 사이였고,그래서 고영근은 일부러 우범선의 집 근처로 이사하고,자기 집들이에 그를 초청해 단도로 찔렀던 것이다.
민비의 총애를 받았던 고영근은 민비 살해의 주역인 우범선을 살해하면 왕실로부터 상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으리라 판단해 그를 해쳤던 것이다.
당시 사정을,망국의 설움 속에 아편을 먹고 자살한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영근도 독립협회에서 죄를 지어 일본으로 도주했다.
그들은 서로 만나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고영근은 1894년 김옥균(金玉均)을 상하이로 유인해서 살해한 홍종우의 경우를 생각하며,그가 만일 우범선을 죽이고 환국하면 그 공으로 속죄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우범선을 살해했다'
고영근은 윤치호 이상재 이승만 등과 함께 독립협회 간부로 1898년에는 만민공동회를 개최,정부의 시정개혁을 요구하고 자주독립과 호헌(護憲) 및 민권을 주장했다.
그가 우범선 살해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1923년 초 그가 홍릉(洪陵)의 능참봉을 했다는 사실은 당시 잡지에 보인다.
당시 명성황후(민비)의 유해를 금곡으로 옮겼을 때,고영근은 그 앞에 세울 비석에 '고종태황제(高宗太皇帝)'라고 최고의 존칭을 썼다.
한말의 풍운을 읽어 가노라면 어지럽다.
외국공관을 거친 망명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다.
이번의 탈북자 25명 말고도,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외국공관을 찾아가 망명을 요청하는 '연쇄 탈북사태'를 걱정하는 소리도 높다.
우장춘은 분명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속죄하는 뜻에서 고난의 조국행을 했던 듯하다.
그는 일본에 처자식을 남긴채 1950년 귀국했고,그후에도 가족들과 거의 접촉하지 못한 채 한국의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9년 뒤 세상을 떠났다.
우범선의 외국공관 피신과 망명으로 우리 역사는 그의 아들 우장춘을 갖게 된 셈이다.
앞으로는 우장춘이 더 없어도 좋으니 외국공관에 달려가 망명하는 일은 더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런 일이 계속될 모양이니 안타깝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