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박사니(?)' 학문의 중심지라는 미국에서도 '박사 대량 생산 체제'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상당한 학문적 경지에 올라야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박사따기'가 너무 쉬워졌고 박사의 수준도 크게 떨어졌다는 것. 성인 2백명당 1명꼴로 지천으로 깔린 게 박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도 나도 박사로 불리는 판이어서 '박사풍년'은 박사 학위 이상을 요구하는 학위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키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8일 '당신은 박사'라는 특집 기사에서 이런 현상을 빗대어 박사를 의미하는 'PhD'라는 세 글자가 마술과 같은 효과를 가졌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고 주장했다. 전에는 박사라면 몇 년씩 도서관 고정석에서 학문을 닦는 힘든 과정을 거쳐 형이상학 같은 거창한 주제를 입에 올려야 했지만,이제는 박사학위 받기가 알파벳 깨우치기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될 정도라고 꼬집었다. 예를 들어 조지아대에서는 졸업 논문 대신 시를 써내고도 창작론 박사학위를 딸 수 있다는 것. 미시간대에서는 영문학의 고전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지 않고도 문학박사가 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심지어 상당수 프로농구 해설자들도 박사라며 도대체 지역 방어와 같은 농구 전술을 이해하는 데 박사학위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또 박사의 수준도 우려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30년전만 해도 박사들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등 하나의 제2외국어는 물론 라틴어까지 구사할 정도로 지성을 갖췄으나 지금은 외국어를 전혀 못하는 미국인이나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영어를 거의 못하는 외국인에게도 박사학위가 남발되는 실정이라는 것. 하지만 '박사홍수'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학위 취득자는 여전히 급증할 전망이다. 시카고대의 전국여론조사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각종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사람이 4만2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과거처럼 외국어 구사 능력이나 어려운 과정의 이수를 요구받지도 않고 외부 학계의 평가도 생략되는 등 박사학위 수여 기준이 크게 완화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와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학위 분야가 매우 다양해진 것도 박사 양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김태철 기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