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아시아의 간판 자금조달 창구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은행들도 최근 홍콩에서 앞다퉈 IR(기업설명회)를 열거나 채권을 발행하는 등 외화차입선의 '홍콩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추세다. 일부 은행들간에는 홍콩의 풍부한 자금시장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덤핑 조짐까지 일고 있다. 유동성이 풍부한 데다 조달금리면에서 세계 어느 시장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홍콩시장에서 1억5천만달러를 조달한 신한은행은 리보(런던은행간) 금리에 가산금리가 불과 0.29%포인트만 붙은 수준에서 조달금리가 결정됐다. 산업은행도 조달금리가 리보금리에 0.26%포인트의 가산금리만 덧붙였을 뿐이다. 현재 외평채 가산금리(0.65%포인트)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 왜 홍콩인가 =홍콩의 환율제도도 홍콩이 아시아 조달창구로 재부상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홍콩은 '1달러=7.8홍콩달러'를 중심환율(pivot rate)로 설정.운영하는 통화위원회(currency board) 제도(고정환율제의 일종)를 택하고 있어 국내 은행들이 홍콩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스왑레이트가 유리할 뿐만 아니라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이 거의 없는 상태다. ◇ 일본시장 부진으로 반사효과 가세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홍콩시장을 대신해 왔던 일본 금융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홍콩시장을 떠받치는 요인이다. 지난 5개월 동안 사무라이 본드시장을 통해 조성된 자금 규모는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80%나 급감했다. '제로'에 가까운 저금리 추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3월 위기설과 4월1일부터 실시할 예금상한 보호제 실시를 앞두고 최대 수요처인 일본 금융회사들이 현금 확보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사무라이 본드시장에서 발행한 채권을 매입할 여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숨은 의도도 가세하고 있다. 상하이를 국제금융센터로 육성하려는 장기 계획의 한 축으로 홍콩 금융시장을 적극 육성하고 있는 것. 중국경제연구소 양평섭 소장은 "상하이는 아직 자본시장 개방이 미흡하고 외환관리시스템이 낙후돼 있어 국제 금융센터로 육성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홍콩의 역할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얼마나 지속될까 =관건은 일본 금융시장이 사무라이 본드시장을 중심으로 언제 제 역할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현재 일본 경제는 부분적으로 경기가 좋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일본 국민들의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고 모든 정책수단이 막혀있는 상태다. 특히 일본 금융회사들은 부실채권 문제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다 갈수록 무역수지흑자 규모가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유동성 부족사태를 면하기 위해 현금 확보에 주력해야 할 형편이다. 사무라이 본드시장을 통해 발행된 채권을 매입하기는 힘들 것이란 얘기다. 중국도 상하이가 국제금융센터로 육성되기 위해 필요한 자본시장 개방 확대와 외환제도 개선, 금융및 외환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금조달 창구로서 홍콩의 '질주'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한상춘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