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들이 지난 25년을 되돌아본다면 이 기간을 세계 금융질서의 성숙기로 기록할 것이다. 첨단기술과 자유시장 이념은 정부주도형 금융시스템을 시장주도형으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금융불안이 심화된 것도 이 기간이었다. 금융체제의 안정이야말로 국제공조의 최우선 의제로 떠올랐다. 국제 금융체제의 안정을 꾀하는 일은 지난 동아시아 위기 이후 광범위하게 논의되기 시작됐다. 우선 합당한 국제기준을 만들고 국제공조를 위한 시스템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70개 이상의 국제기준이 마련됐다. 이 기준은 국제기구 및 시장기능 회복,회계와 감사제도 도입 등을 포함하고 있다. 회계보고서는 금융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의미있고 믿을 만한 회계보고서는 효율적이고 건전한 금융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다. 회계보고서의 오류는 선진국이나 신흥국가들에 똑같은 폐해를 끼쳤다. 투명한 회계장부가 없었기 때문에 세계 금융불안이 심화됐으며 아시아 위기도 발생했다. 엄청난 액수의 자금이 아무런 규제없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채권자와 투자자들은 건전한 기업과 부실기업을 구분할 수 없었다. 최근 엔론사태는 가장 선진화된 금융체제도 예외가 아니란 사실을 일깨워줬다. 결론은 간단하다. 잘못된 회계정보는 금융시스템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정보의 오류는 귀중한 경제자원을 엉뚱한 곳에 사용하도록 만들며 금융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국제적인 회계보고서 기준은 금융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국가들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또 이 국가들이 어떤 모델을 따라야 할 지 몰라 갈팡질팡할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최근 세계 회계보고서 기준을 마련하자는 시도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사항은 "위험공개"와 "회계정보"에 관한 것들이다. 위험공개는 주로 금융당국이 시도해왔다. 파생상품의 급성장과 회계장부의 모호성 증대는 결과적으로 시장에 존재하는 다양한 위험을 낱낱히 공개하도록 유도했다. 투자회사 LTCM의 파산은 이같은 위험공개 관행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회계정보의 경우 지난해 국제회계표준위원회(IASC)가 재정비되면서 비로소 첫 단추가 채워졌다. 이 기관이 제시한 기준들은 세계 각국이 모두 인정한 게 아니기 때문에 법적 효력은 없다. 이 기준들은 주변상황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지금도 개선작업이 진행중이다. 여기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처리돼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각국 정부가 국제적인 회계기준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힘들었던 것은 각국마다 회계관행이 다르기 때문이다. 회계보고서가 명백하고 공정하게 작성돼야 하느냐 아니면 기업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느냐 하는 주장은 유럽 내부에서조차 엇갈린다. 미국과 영국의 회계관행에도 차이가 있다. 국제적인 회계기준을 마련했다고 해서 즉시 효력이 발휘되는 건 물론 아니다. 기준을 지속적으로 감사해야 하며 세계각국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 부실회계로 파산한 엔론 사태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미국도 새 제도를 도입하는 데 커다란 진통을 겪었다. 한 국가가 아니라 세계 공통의 제도를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적정한 회계보고서 작성은 세계 금융질서를 확립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지금까지 많은 진보를 이뤄왔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정리=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이 글은 앤드류 크로켓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이 최근 스위스 뤼쉴리콘에서 열린 "2002 미국.유럽 심포지엄"에서 "Towards glob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를 주제로 행한 연설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