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만년설의 나라 '스위스'] 눈앞엔 알프스 귓가엔 하이디의 속삭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약간의 두려움과 설레임'
이국에 도착할 때마다 드는 느낌이다.
스위스 취리히공항에 내렸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비행기의 작은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르디 푸른 하늘이 두려움보다는 묘한 흥분감과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이제 1주일간의 스위스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공항역을 출발한 기차를 타고 10여분만에 취리히 중앙역에 도착했다.
유럽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중앙역은 취리히 한 가운데 있었다.
역을 나오자 눈에 들어온 것은 구시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이제 막 타오르는 붉은 노을 속에 서서히 잠겨가는 모습이 유럽에 와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다음날 취리히 시내 관광을 마친 후 동화 '알프스소녀 하이디'의 주무대라는 마이엔펠드를 향하는 기차를 탔다.
기차 밖 풍경은 호수와 알프스의 나라라는 스위스를 실감케 했다.
넓게 펼쳐진 호수, 정상엔 만년설이 쌓여 있는 깎아지른 듯한 산들.
처음 마주친 스위스 자연은 이국의 정취를 넘어 인간의 왜소함을 느끼게 했다.
기차를 갈아타고 한시간여만에 도착한 마이엔펠트에서 하이디의 우물, 하이디 하우스 등을 둘러봤다.
이어 와인 시음을 위해 마이엔펠트 바로 옆에 있는 예닌스로 향했다.
독일과 인접한 스위스 동부 지역인 이 마을의 와인은 향이 좋은 백포도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4대째 와인을 만들고 있다는 크리스티앙 브레히트씨 댁을 방문했다.
그의 아들도 부모를 도와 와인제조 공부를 하는 중이어서 이 집안의 와인 만들기는 5대째 이어지고 있다.
먼저 와인을 만드는 시설들을 둘러본 후 와인을 시음했다.
이를 위해 이 농가의 안주인인 엘리자베스가 스위스 특유의 말린 쇠고기인 뷘트너 플라이쉬와 비안드 세쉬, 그리고 맛이 진한 치즈를 갖고 왔다.
얇게 자른 이 쇠고기들을 구경하고 있는 동안 화이트 와인 한병을 따서 향기를 음미하며 살짝 맛을 봤다.
그리 달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입안으로 퍼졌다.
바람에 넘실거리는 포도밭을 상상하며 잔을 돌려 와인향을 진하게 만든 후 다시 한 모금.
뛰어난 후각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시음하는 화이트 와인마다 향이 서로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맛의 차이도 혀끝에 느껴졌다.
와인과 함께 먹은 말린 쇠고기들도 조미료 향이 입에 맞고 부담되지 않아 와인의 취기를 적당히 무마시켜줬다.
다음날 목적지는 오스트리아 국경에 근접한 엔가딘 계곡의 스쿠올.
이 곳은 위와 뼈에 좋은 광천수 때문에 옛부터 신비의 온천지로 알려졌다.
이곳 온천센터는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에도 현대식 시설의 온천풀이 있다.
해발 3천m가 넘는 눈덮인 산들을 보면서 실외 온천풀에 몸을 담갔다.
마사지용 물줄기가 몸의 곳곳을 시원스럽게 때려주고 병아리깃털같은 바람이 물에 젖은 얼굴을 간질렀다.
'세상에 이런 여유로움도 있구나' 하는 느낌.
온천욕을 마친후 이틀간의 여정으로 유명 스키리조트인 사스페로 향했다.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사스페에서의 스키 타기 역시 국내 스키장만 접한 사람들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들.
해발 1천8백m 정도에서 출발하는 '알핀 익스프레스'라는 케이블카를 탄 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달린다는 '메트로알핀'이라는 산악지하철로 갈아타고 해발 3천5백m의 알라린산 정상에 도착했다.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볕 덕분에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높은 곳이라 그런지 숨이 찼다.
가쁜 숨을 가다듬고 있는 사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달마시안 한 마리가 스노보드에 올라탄 주인을 끌고 쏜살같이 스쳐 지나쳐 갔다.
숨을 깊게 몇 번 들이마신 후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눈이 건조하고 빙판이나 녹은 곳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국내 스키장에서 이런 슬로프를 만난다는 것은 좀처럼 어려운 일.
슬로프 덕분인지 심한 경사에서도 턴하기가 쉬웠다.
턴을 할 때마다 들리는 '스윽' 소리가 만냥 경쾌하다.
아시안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도시인 인터라켄에서 하루를 더 묶은 후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취리히공항으로 향했다.
길덕 기자 duk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