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제도처럼 온 국민의 혈압을 올리는 관심의 대상도 드물 것이다. '이상적'까지는 못되더라도 우리의 주어진 현실에 비추어 합리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교육제도가 무엇일까? 흔히 은퇴를 전후해서 자신이 택해 온 전공과 직업이 과연 자신의 성격과 소질에 맞았던 것일까 반성해 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같은 전공과 직업을 주저하지 않고 되풀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자신이 평생을 몸담아 온 대학사회를 보면,적지 않은 수의 교수들이 사이비 학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학장·총장에 출마하고,정치권에 줄을 대 장관·총리 등을 해보려 애쓴다. 중·고교 때 공부 잘했다는 죄로 일류대학에 입학하고,박사학위 받아 교수의 길로 들어섰지만,지나고 보면 전공이나 직업이나 모두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름대로 탈출구를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무슨 분야건 자신의 적성에 맞고,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일 자체를 즐기게 되기 때문에,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정력이 최대한 분출되고,잠재능력이 최고로 발휘될 것이다. 라면을 끓이는 조리사나,사업가나,문인 예술가나,학자나 각기 그 분야의 정상에 도달하는 것은 자신의 일 자체에 몰입해서 즐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성취되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즐기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정상에 도달했다고 말해주는 것이 듣기 싫지는 않겠지만,본인자신의 내면의 세계에서 관조해 본다면 별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도대체 정상에 도달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국보적인 장인이 되거나,학문의 정상에 도달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다. 정상에 도달하건 않건 그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테레사 수녀 같은 경지에 도달하면 노벨평화상 같은 것을 받건 안받건 차이가 없을 것이다. 환상이나 허영심에서 무작정 목표를 미리 정해놓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고통을 참아가며 억지로 되풀이한다면,그 도달할 수 있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설사 목표를 달성한다 해도 나중에 되돌아보면 무의미한 회한의 일생이 될 수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전공이란 것은 대부분 고교 때 자신의 무지와 부모의 편견에 의해 결정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합리적인 교육제도란 상당 기간 지적방황을 장려하고,각자가 자신이 과연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아내고,자신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데 소질이 있는지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하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일단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전공이 선택되면,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제도가 이상적인 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육제도란 마치 교육행정을 담당한 관리들만을 위한 제도인 것 같다. 어째서 좀 근본적인 개선이 안되는 것일까? 최고통치권자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 나오는 신념과 사명감을 갖고 자신의 임기 중 끊임없이 관심을 표시하지 않으면 도대체 되는 일이 없다. 하루살이 목숨의 교육부장관이 설사 교육제도에 대해 무슨 소신을 가졌건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거의 모두가 제대로 된 초·중등 교육제도가 무엇인지 체험을 해 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선진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 그저 피상적인 정보를 가지고 멋대로 공상을 해 보는 수준이라,구체적으로 정책을 집행해 보면 상태를 더 악화시키고 만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사람은 이승만 박사 한사람 정도인 것 같다. 1875년에 태어나 일찍이 한학을 배우고,조지워싱턴대에서 학사,하버드대에서 석사,프린스턴대에서 국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28대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이 프린스턴대 총장으로 있을 무렵 그의 조교 노릇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고등교육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그 이후의 대통령들은 고등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리가 없었으니 우리나라 고등교육제도가 아직까지 이 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wthong@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