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德根 < KDI 국제정책대학원 통상법 교수 / 미국변호사 >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한·일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산·관·학 공동연구회 구성에 합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2001년 5월 양국에서 'FTA 비즈니스 포럼'이 구성되어 경제협력에 관한 토의가 민간 주도로 진행된 이래 중요한 진전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한·일 FTA가 성사되는 경우 아시아 국가로서는 유일한 OECD회원국이며 대표적 무역강국인 양국 시장이 통합됨으로써 전세계 GDP의 17%에 달하는 규모의 경제권역이 형성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한·칠레 FTA를 비롯 멕시코 뉴질랜드 태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와 조심스럽게 FTA 체결 가능성을 가늠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FTA 추진을 통해 정태적인 무역창출효과 뿐만 아니라 시장 확대를 통한 규모의 경제 및 경쟁촉진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한·일 FTA 문제에는 그동안 한·칠레 FTA 추진과정에서 경험하고 기대한 것과는 뚜렷하게 다른 부분들이 있다. 한·칠레 FTA 논의의 경우 기본적으로 우리 공산품과 칠레 농산물 교역 확대로 규정되는 비교적 단순한-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로서는 아직까지 해결할 수 없는-'경제문제'였다. 그러나 한·일 FTA문제의 경우 만성적인 대일적자라는 경제감정에다 독도 정신대 역사교과서 등의 정치감정까지 복합돼 있어 FTA 체결을 위한 국민적 합의 도출에는 그야말로 '정경(政經)의 난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로서는 대일(對日)평균관세수준이 약 8%인데 반해 일본의 대한(對韓)평균관세수준은 3% 미만으로 추가 관세인하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대일 무역관계에서는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인 산업부문의 열세가 두드러져 무역역조의 심화 및 장기적인 산업기술력 저하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일 FTA에 기대하는 혜택은 '무역분야에서의 소비자 후생증진 효과보다는 투자의 확대'다. 즉 FTA 체결에 따른 안정적 무역환경 조성과 전반적 기업경영 환경개선으로 해외로부터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의 경제적 기대효과다. 우리로서는 현재 WTO(세계무역기구)체제에서 규정하는 바의 무역자체에 초점을 둔 '일반적 형태의 FTA'보다 투자 및 인력 이동의 자유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형태의 FTA'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일본은 최근 체결한 싱가포르와의 FTA협정에서 그러한 포괄적인 부문의 자유화에 합의한 바 있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한편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투자환경 개선 문제는 FTA협정 체결이 이를 보완해 줄 수 있으나 그 자체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의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선결과제는 늘 얘기되어 온 바와 같이 노사문제 해결,정책 집행의 투명성,기업부문 기술력 개선 등의 근본문제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제반 경제적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한·일 FTA 협상을 경제적 실익이 보장될 수 있도록 추진하기 위해서는 한·일 FTA 추진이 우리의 투자환경 개선에 어떠한 실질적 연계를 갖고 진행될 수 있는지의 문제가 공동연구회에서 심도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양자간 FTA 논의는 다자간 통상규범의 논의에 비해 쉽게 '정치화'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WTO를 통한 다자간 무역협상에 비해 FTA 협상 과정에서는 정치적인 고려나 영향이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경향이 많은데,이는 한·일 FTA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동아시아 3국의 주도권 문제가 첨예한 국제정치요소로 부각되고 있으며,대내적으로는 FTA에 따른 산업간 구조조정 문제가 국내정치적인 대립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향후 한·일 FTA 성사의 관건은 양국 정상의 정치적 지도력에 달려 있다. 이것이 대일 경제문제에 관한 우리 대통령의 결단과 대한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본총리의 결단에 주목하는 이유다. dahn@kdischool.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