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에 세상이 흔들린다. 틀 안에 갇혀있던 사고에서의 자유. 기분 좋은 밤이다. 우리 네식구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딸아이의 호들갑. 태어난지 51년만의 외식이라나. 겨우 21살짜리 딸의 조크다. 음식이 나오고 수저를 드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말, "얘들아 우린 복 받은 거야. 감사하며 먹자" 비 온 뒤 햇살이 더 맑고 싱그럽다. 그래서일까. 고통 뒤에 맞는 기쁨은 배가된다. 작년 한해 강의를 다니며 했던 말, "우리 집에서 제가 기쁨좁니다. 대학 떨어져 재수하는 딸, 편입하다 못해 어학연수간 아들, 아직도 공부중인 남편. 그래도 나 잘 나가는 걸 감사하며 살아요. 대학 떨어진 딸에게 말했죠. '야! 11:1에서 떨어진 애가 정상이냐? 붙은 애가 정상이냐? 떨어진 니가 정상이다. 이것아, 어깨 펴' 그리고 편입 못한 아들에게는 '야! 넌 역시 전국군가 보다. 사나이가 스케일이 커야지.안 그래? 멀리 갔다 와라' 아직도 공부하는 남편에게는 남편이 타는 말에 얹혀 가는 것보다 내가 타는 말에 남편 싣고 가는 것도 아름다운 삶이다"라며, 항상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서 즐겁게 살았다.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과거에 대한 가장 훌륭한 반성이며,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미래에 대한 가장 훌륭한 준비다'라는 문구를 매일 볼 수 있게 냉장고 문에 붙이고, 그런 하루하루가 채워져 한해는 갔다. 그러나 딸애는 '가'군 대학발표에 불합격 소식을 듣는다. 가라앉은 집안 분위기. 그렇게 몇주가 가고 1차 발표에 '혹시나'하는 희망이 '역시나'로 또 좌절될까봐 '기대하지 말자'라는 자기방어까지 쳐가며 보냈다. 드디어 구정 전날 1차 발표에 합격소식을 듣는다. 그렇게 딸애는 원하는 학교에 드라마틱하게 붙었다. 아들놈은 워낙 경쟁심이 없다. 공부보다 자동차에 미친 아들.지방대 자동차공학과에 다니며 자동차 동아리에 더 열심이었다. 2년간 지방대학을 다니며 방학동안 엄마 로드매니저였던 아들. 어딜 가면 1백84㎝의 아들을 기사로 볼까봐, "제 아들이에요"로 말을 시작했다. "아들 잘 생겼네요. 배부르시겠어요" 기분 좋은 시작이다. 그러나 그 뒤엣말, "너 어느 대학 다니니?" 그 순간부터 분위기는 썰렁해진다. 참 화술이 서툰 한국인이다. 왜 우리들은 썰렁한 분위기 확률이 많은 그 질문을 의례적으로 꼭 하는 걸까? 소위 명문대학이라는 대학 다니는 학생보다 그렇지 못한 학생이 더 많은게 현실인데 말이다. 99.9%가 만나면 꼭 "너 어느 대학 다니니?"다. 그중 0.1% 천안시장님은 "너 몇학년이니?"-식사 내내 분위기 좋더라. 그때부터 전국 다니며 나 홀로 캠페인. "너 어느 대학 다니니 하지 마라. 너 몇학년이냐로 하자. 그렇게 해도 알건 다 알 수 있다. 명문대학 다니는 놈은 너 몇학년이냐? 하면, 꼭 앞에 붙이더라. '○○대 2학년인데요', 그냥 '2학년인데요'하면 보통의 대학에 다니나보다 생각하면 된다"고 재밌게 말했지만 그때마다 속상함이란…. 한국은 역시 포장사회다. 개성 있던 엄마와 아들, 결국은 힘없이 항복하고 편입 전략을 세웠다. 다니던 학교 학점 안 좋지, 영어시험 못 봤지…, 결과는 뻔했다. 세 학교 지원해서 다 떨어졌다. 그래서 어학연수하고 1년만에 또 다시 편입 시험을 봤다. 아들녀석이 대기자 명단 1번이다. "엄마 될 것 같네. 참 내가 대기자 1번이라니…" 아들도 믿어지지 않는 양. 싱글벙글∼ 그렇게 아들도 'In Seoul'했다.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10%만 서울 안의 대학에 가는 현실에, 3년만에 'In Seoul'한 아들. 갑자기 자식 학교가 업그레이드 됐다며, 딸애가 한 턱 쓰라는 통에 저녁 먹으려니 지난 세월 힘들어하던 자식 태연한 척 지켜보던 어미 가슴앓이 풀려 술 한잔에도 취한다. 세상사람 그 누가 잘 살고 좋은 학교 가고 싶지 않은 이 있는가. 소망대로 이뤄질 수 없기에 그 소망을 향해 열심히 뛰다 밤이면 허망함에 술 한잔으로 시름 달래며 그렇게 그렇게 사는게 인생인데…. 작은 소망 이룬 자식.또다른 소망의 길이 길고도 험함을 알면서도 이 밤, 감사함에 기분 좋아 입이 귀에 걸린다. 그 큰 입이…. < jdh9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