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결산법인의 정기주총시즌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경기 침체 여파로 주주 배당금은 줄었지만 올들어 주가가 많이 올라 소액주주의 불만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소모적 논쟁을 벌이던 예전의 주총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제무재표를 승인하고 회사의 전망및 향후 전략을 경영진과 주주들이 마주 앉아 논의하는 장면을 연출한 곳이 많았다. "IR(기업설명회)"을 방불케 했다. 주주들이 임원 보수및 상여금 한도를 높이는데 앞장서면서 "많이 받고 열심히 일하라"는 주문도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기업 회계관행및 경영이 투명화됐고 주가가 많이 오르면서 이같은 新풍속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총은 IR의 場=올해 주총중 상당수는 IR(기업설명회)행사인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총회꾼및 시민단체와의 몸싸움이나 마이크뺏기,소모적 논쟁 등도 사라졌다. 그 바람에 주총 시간도 크게 단축됐다. 지난해 7시간반이나 걸렸던 삼성전자 주총은 올해 3시간만에 끝났다. 특히 많은 기업들이 주총장에서 과거의 기록인 재무제표 보다는 장래 계획이나 실적전망,주가부양 정책 등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22일 주총에서 KT로 회사명을 바꾼 한국통신은 이상철 사장이 향후 민영화 전망과 자사주 매입계획은 물론 상세한 경영목표를 밝혔다. LG전자는 지난14일 주총에서 IR담당 임원이 소액주주를 상대로 브리핑하는 프리젠테이션식으로 주총을 진행,주주들의 호평을 받았다. 지난15일 주총을 연 풍산도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으로 IR자료를 꾸며 배포하는등 설명회를 겸했다. 이 회사 김복만 총무과장은 "작년 수준의 배당금 지급을 결의했지만 주가가 많이 오른 탓인지 고배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IR방식의 주총은 코스닥기업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해 경기침체와 회계감사 강화로 실적은 저조했지만 올해 경기회복에 힘입어 희망찬 실적목표치를 내놓으며 "주주달래기"에 나서고 있는 것.수주현황 등 매출목표치에 대한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는 곳도 적지않았다. 새롬기술과 메디다스 등은 올해 전망과 지분정리 일정 등을 상세히 밝혀 주목을 끌었다. 상당수 기업이 임원 보수및 상여금 한도를 올리고 스톡옵션 지급을 결의했는 데도 불만을 제시하는 소액주주를 찾기 어려웠다. 지난 16일 열린 현대모비스 주총에서는 이사 보수한도를 12억원에서 15억원으로 올리자는 회사측 제안에 대해 일부 소액주주가 "실적을 감안해 20억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젊어지는 임원진=올해 주총에선"30대 상무와 40대 부사장"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실무형 발탁인사가 가져온 결과다. LG그룹 관계자는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을 적용해 그간 성과에 상응하는 인사를 실시했다"면서 "지난해 이동단말기 사업을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시킨 LG전자 김종은 부사장이 정보통신총괄부문 사장으로 승진한 게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분야별 영업 전문가와 중국통이 상당수 발탁된 것도 특징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재무기획본부장(CFO)에 윤종규(47) 삼일회계법인 부대표를 영입,부행장 15명 가운데 6명을 40대로 채웠다. 부산은행에도 처음으로 40대 임원이 탄생했다. 부산은행도 주총에서 홍콩상하이은행 자금부본부장을 지낸 정성태(47)씨를 상무로 영입,처음으로 40대 임원을 탄생시켰다. 조직 축소=작년에 이어 등기임원수를 줄이고 집행임원을 늘리는 추세가 이어졌다. 등기임원이 많아지면 사외이사수도 늘어나 비용이 많이 들고 적임자를 고르기도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미은행은 이사회 회장직을 없애고 행장이 이사회 회장을 겸임토록 했다. 국민은행은 사외이사 수를 19명에서 9명으로 대폭 줄었다. 대기업 오너 가족의 등기임원 선임도 눈길을 끌었다. 구본무 LG그룹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필립스LCD 대표는 LG전자의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장남 정의선(32) 현대차 상무는 전무로 승진한데 이어 현대모비스의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