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교훈 남긴 '낙하산 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국민은행 감사 선임을 둘러싼 '낙하산 쇼'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진행과정에서 극전 반전이 많은데다 곱씹을 만한 대목도 적지 않다.
우선 이번 쇼는 출발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금융감독원과 재정경제부는 국내 최대 은행이 된 국민은행을 놓고 낙하장 마련을 위한 힘겨루기를 벌였다는 후문이다.
금감원이 여기서 양보를 얻어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국민은행 감사로 내정된 이순철 금감원 부원장보가 낙하산 타기를 거부한 것.
일단 낙하 지점이 마련되면 대상자들이 소리없이 '군령'을 따라 뛰어 내려온 관례에 급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 부원장보의 '군령 거부' 이유는 '복수 감사'라는 착지(着地)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리를 주선했던 군령권자의 체면만 졸지에 땅에 떨어지게 됐지만, 쇼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낙하병이 계속 버티자 2명의 상급자들이 갑자기 사의를 표명했다.
조직 명령 계통에 손상을 입힌데 책임을 지겠다는 사유와 함께.
국내외 64개 은행과 44개 보험사에 대한 검사.감독을 총괄하는 금감원 부원장들이 부하 간부를 내보내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옷을 벗겠다고 나선 것.
자산 1백90조원의 이른바 '리딩 뱅크'인 국민은행에서는 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낙하병이 안가겠다고 정식 통보했는데도 이 은행은 22일 주총에서 낙하병을 '감사'로 선임했다.
감독당국에 끝까지 성의를 보이기 위한 자발적 결정인지, 뒤에서 팔을 비튼 금감원의 압력 때문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이번 쇼가 어떤 결말을 낼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지만, 금융계에서는 "낙하산 인사 관행이 종착역에 다다른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많다.
국민은행이 처음부터 기존 이철주 감사의 연임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에 금감원이 '복수 감사'라는 무리수를 밀어붙인게 자충수였다는 얘기다.
'시장자율'을 강조해 온 이근영 금감위원장의 말처럼 시장은 변했다.
정부와 감독당국이 이번 일을 낙하산 관행에 대한 뼈아픈 성찰의 기회로 삼기 바란다.
박수진 경제부 금융팀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