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1시. 동대문의 서부 소매상권에 위치한 패션몰 두타 1층. 복고풍의 진홍색 남방을 놓고 같은 또래의 판매원과 손님간에 흥정이 붙었다. 결국 손님은 2만3천원짜리를 1천원 에누리하는데 성공한 뒤 그 돈으로 떡복기나 사먹자며 서둘러 매장을 빠져나간다. 판매원 김혜연씨(가명.22)는 "사람이 많아도 그저 구경만하는게 대부분이어서 아직 마수걸이도 못한 점포가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4층 모자전문점 주인인 김영진씨는 "지난 겨울과 올 봄 날씨에 대한 예상이 빗나가는 바람에 낭패를 본 상인들도 적지않다"며 "신문과 TV뉴스를 보면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고 하는데 남의 나라 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상가상으로 외국인 관광객과 보따리상도 줄었다. 구매안내소의 고동철 소장은 "중국인 방문은 늘어났지만 구스매력이 작아 실속이 없고 일본인들은 원가가 싼 중국본토로 거래처를 돌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지방 소매상들이 모여드는 동대문의 동부 도매상권도 사정은 마찬가지. 밀리오레 밸리 1층에서 여성복매장을 운영하는 이정수 사장(가명)은 "대구 부산 등지에서 일주일에 두번꼴로 올라오던 상인들이 지금은 열흘에 한번꼴 횟수가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마저 계절변화에 따라 상품을 갈아주기 위한 것이지 재고가 소진돼 보충하려는 물건이 아니다"고 푸념했다. 서민경제의 바로미터 격인 동대문 상권에서는 아직도 봄기운을 느낄 없다. 경기호전의 온기가 전혀 와닿지 않는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한결같은 지적. 지금이 바닥이므로 하반기부터는 희망을 가져도 좋지않겠느냐는 기대만 내비치는 정도다. 혜양엘리시움의 양홍섭 전무는 "더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월드컵을 전후로 시장경기도 뜰 것 같다"고 내다봤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지방에 동대문을 본뜬 대형 패션몰이 늘어나면서 동대문 재래시장의 도매기능이 분산됐고 저가형 패션상품을 아울렛과 할인점이 잠식함에 따라 동대문 경기가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