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A사의 일본법인 대표 C씨 부부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잦아졌다. 다음 달 귀국을 앞두고 걱정이 끊이지 않아서다. C씨 부부가 도쿄에서 생활한 기간은 4년 남짓.짧지 않지만 길다고 보기도 어려운 기간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울 분위기가 너무 달라졌다며 앞날 생각에 머리가 무겁다. 올해로 52세인 C씨는 본사 귀국발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안다. 한직으로 내몰리거나,무보직 상태로 몇개월 지낸 뒤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50줄에 들어선 자신을 반길 부서는 아무 곳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도쿄생활을 접고 돌아간 주재원들의 상당수가 이같은 코스를 거쳤다는 것을 그는 확인해 왔다. 부인을 움츠러들게 한 걱정은 물가다. 이사할 집도 구할 겸 지난 달 서울에 들렀던 부인은 껑충 뛰어버린 물가와 집 값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4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데도 슈퍼마켓이건 식당이건 물가는 몽땅 점프해 있었다. 또 서울 강남지역의 경우 평당 2천만원 이상의 아파트가 수두룩하다는 중개업소의 설명에 기가 질려 버렸다. 부동산값 거품이 심하다고 손가락질 받았던 도쿄 도심에서도 평당 1백50만엔만 주면 번듯한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기까지 하다. 정부와 기업은 대일 무역불균형 시정을 거론할 때마다 '효율적 판로개척''마케팅 활동'이 중요하다며 빼놓지 않고 끼워넣는다.우수인력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본시장의 속사정과 일본인들의 생각을 알 때쯤이면 비즈니스맨들은 보따리를 싼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엉뚱한 일에 매달리거나 일터를 떠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보통 일본인들의 행복지수는 높은 편이 못된다. 그렇지만 50세를 넘었다는 이유로 전문가들의 실직이 당연시되거나,아파트 값이 수개월 사이에 30% 이상 폭등하는 '이변'은 없다. 일본 땅에서 본 한국 사회의 과제는 거창한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측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더 미룰 수 없는 진정한 숙제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