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객장의 애기 울음소리는 주식시장의 과열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게 증권가의 통설이다. 주가가 상투를 치면 주식을 서둘러 매매하려는 마음이 앞서 아이를 데리고 객장을 찾는 투자자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때면 증시는 지나친 기대와 초조함이 뒤엉키며 짜증스런 투기장으로 돌변하게 된다. 물론 현명한 투자자들은 통장을 정리하고 주식시장을 떠난다. 우리 선거판도 이상과열을 알리는 울음소리가 나기는 증시와 마찬가지다. '음모론'을 앞세운 상호비방전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후보들이 손을 맞잡고 정책대결과 페어플레이를 외치지만 우열이 가시화되면 이내 정책대결은 사라지고 비방전이 난무한다. 청와대는 음모론의 배후세력으로 떠오르고,그 핵심격인 '김심(金心)'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측근 논란에 말려든다. 그리고 패배자는 탈당이란 카드를 내밀고 승자와 대립한다. 이때면 유권자들은 서서히 등을 돌리게 되고 선거전은 '그들만의 잔치'로 변해가는 게 공식처럼 되풀이돼 왔다. 대통령선거를 9개월 앞둔 지금 정치권이 벌써부터 이같은 나쁜 선례를 재연하고 있어 걱정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당내 대선후보경선을 시작한 여당은 초반부터 음모론과 색깔론에 빠져 들었으며,야당은 경선도 하기전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어 그렇다. 사실 이번 대선전은 정치권이 국민참여경선이란 새로운 정치실험을 국민들에게 선사,기대속에 출발했다. 선거인단의 절반은 당원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국민이란 점에서 당내 경선부터 관심은 상당했다. 민주당 경선 때문에 주말이 기다려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나라당도 조만간 국민경선제를 통해 대선후보 및 지방선거 후보를 뽑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사그라들고 있다. 민주당은 유종근 전북지사가 음모론을 제기하며 대선후보를 사퇴했고,지금은 이인제 후보가 바통을 이어 받아 청와대를 그 배후로 간접 거론하며 강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드세지고 있는 노풍(盧風·노무현 후보바람)을 겨냥한 다른 후보들의 색깔논쟁도 확산 일로를 걷고 있다. 노 후보측도 선두주자인 이 후보가 구여권출신이란 점,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경선결정에 불복했다는 점을 내세워 '정체성'을 문제 삼아왔다. 상황여하에 따라 한쪽이 당을 떠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의 집안사정은 보다 복잡하다. 이회창 총재가 대선후보와 총재직을 모두 갖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당 내홍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접어들었다. '대권'이란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당내 민주화는 일시 유보해도 된다는 의도가 비주류측을 자극한 한 요인이다. 자칫 대선후보 국민경선전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여당에서나 나옴직한 측근정치 논란은 더 큰 문제다. 이 총재는 "측근은 없다"고 강변했지만,'아웃사이드가 더 많다'(최병렬 부총재)는 소외감이 강한 게 사실이다. 그 여파로 이 총재에 대한 지지도는 노풍에 밀려 추락세를 보였고,급기야 부총재단의 동반사퇴마저 예고되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부에 대한 실망매물이 야당으로 매기가 확실히 옮겨가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국민의 정부는 '정권재창출' 능력이 약하고,제1당인 한나라당은 '수권'능력이 떨어져 확실한 '기대주'가 없다는 대선정국에 대한 일반적 관전평에 수긍이 간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정치권의 변화를 상징하는 '노풍'이 거세지는 이유를 단순히 일과성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시대에 이르렀다. 정치권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라도 진흙탕싸움보다는 '무욕명퇴(無慾名退)'를 택하는 용기있는 정치인이 한번쯤은 나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