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섭 보령제약 노조위원장(40)의 거칠한 왼손에는 결혼반지 대신 커다란 금반지가 끼워져 있다. 조합원들이 복지향상을 위해 청춘을 바친 장 위원장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순금 한냥을 녹여 만들어준 것이다. 장 위원장은 보령제약 노조의 산증인이다. 회사 창립 20여년 만에 노조가 결성된 지난 87년, 24세의 피끓는 청년이었던 그는 20명의 노조발기인 중 한명으로 노조 출범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만해도 노조를 대하는 회사측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노조 사무실에 출입하는 조합원을 일일이 체크하는 사측과 이에 반발하는 노조와의 신경전은 극에 달했다.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같다는 말이 꼭 들어맞았어요. 하나를 양보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하나를 얻어내야 한다는 인식이 양측에 팽배했습니다" 노조 위상 강화를 위해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이때 쯤이었다. 마침내 지난 96년 노조위원장 선거에 입후보했고 조합원들은 '강성 노조'를 외치던 그를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시켰다. "당선 후 처음 나선 임·단협때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빨간 조끼와 머리띠를 두르고 협상테이블에 나섰더니 회사측 대표들이 기겁을 하고 협상장을 빠져 나가더군요" 이러한 노사대립 관계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전환점을 맞았다. 도매업체들의 연쇄 부도로 공급선이 끊기고 경영에 비상등이 켜지자 노조측이 먼저 희생을 자처했다. 회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인위적인 감원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구체적인 경영정상화 목표를 제시했다. 노사화합의 결과는 98년 이후 매출 급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년 이 회사의 매출액은 1천2백억원, 순이익은 1백32억원에 달했다. 올 매출목표는 1천6백억원으로 잡고 있다. 장 위원장은 "노사는 기능과 역할만 다를 뿐 한곳을 바라보는 평등한 동반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