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노조파업이 정부와 노동계의 정면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이번 발전파업사태에서 노동계에 밀릴 경우 공기업 민영화는 물론 집권후반기 전반적인 경제정책수행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확실하게 밀어붙인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발전노조는 정부의 강공에 상당히 당혹해 하면서도 여당의 경선정국을 비롯한 정치적인 상황 등을 염두에 두고 버틸수 있는데 까지 버틴다는 자세다. 이같은 최악의 노정관계가 오래갈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전력대란과 4천명에 달하는 발전노조원들의 대량해고사태다. 또 민노총의 전국 총파업추진이 현재로선 먹혀들 분위기가 아니지만 기업들은 발전파업이 일파만파로 번질지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요컨대 발전파업사태의 확전으로 정부의 경제정책은 물론 어렵사리 호조세를 보이고있는 경제와 산업계의 투자 분위기등을 해치지 않을지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 왜 이 지경까지 왔나 =원인(遠因)은 정부의 전력산업구조개편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한국전력을 민영화하겠다는 이 법안은 2000년 12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정부는 이 법에 따라 우선 2001년 4월 한전의 6개 발전부문을 분리했다. 발전부문 민영화로 경쟁체제를 도입해 경영효율을 높이려는 취지다. 정부의 발전부문 민영화는 한국수력 원자력 발전을 제외한 5개 한전 발전자회사중 1∼2곳을 국내외에 매각하는 방향으로 결정됐다. 발전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한 것은 이같은 민영화 방침 때문이다. 발전 노조원들은 민영화로 인력구조조정이 이뤄지면 고용불안이 초래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사 단체협약조항 총 1백43개중 노조 전임자수와 조합원 신분변동 등 2개 조항에서 타협을 보지 못한 것이나 노조가 끈질기게 민영화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향후 고용불안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러나 정부와 발전회사측은 민영화 철회가 노사 교섭대상이 아니라고 아예 못박고 나왔다. 국민의 합의를 통해 국회에서 통과된 법인 만큼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발전회사측은 지난 5일 이런 이유를 들어 협상중단을 선언했다. 19일엔 김대중 대통령이 나서 민영화 철회불가 방침을 천명했다. 이어 지난 21일 25일까지 복귀하지 않는 노조원을 전원 해임한다는 최후통첩을 노조측에 보냈다. 이같은 강경책에 노조측은 정부와 회사측이 그나마 남아 있는 협상여지를 깔아뭉갰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24일 최후 협상에서 "정부와 사측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해 발전소 매각철회라는 핵심요구를 서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양보했으나 정부와 사측이 발전소 매각인정 문구를 반드시 합의문에 넣도록 요구해 결렬됐다"는 주장이다. ◇ 정부대응 문제 없었나 =월드컵을 앞두고 안정적인 노사관계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기대했던 정부는 공공부문 노조의 동시 파업에 이어 발전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측은 지난 한달간 '민영화 원칙 불변'이라는 원칙에 얽매여 막후 협상 등을 통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노조원 징계, 가압류 등 강경 일변도의 자세를 견지해 왔다. 사측이 파업 초기 협상보다는 노조원과 가족들에 대한 압박과 회유를 지속하면서 파업 대오가 흐트러질 것이라는데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했던 것도 4천여명의 대량 해고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몰고 온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더기 해고의 후유증과 전력대란에 대한 우려때문에 정부와 사측은 물론 노조측도 파업 장기화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어 기싸움을 지속하는 가운데 막후 협상을 통한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춘투로 번지나 =민주노총은 26일 오후 2시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대의원 대회를 열고 정부의 강경진압과 무더기 해고조처 등에 맞서 총파업 여부 등 구체적인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발전산업 민영화 저지투쟁과 생존권 차원의 극한투쟁을 벌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이 초강경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발전노조 파업결과가 올해 노동운동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대사안이라고 판단해서다. 여기서 노동계가 물러설 경우 공무원노조나 비정규직 보호문제 등을 둘러싼 정부와의 향후 협상력이 상당히 약화될 것이라고 보고 결사적인 항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의 다른 한축인 한국노총은 아직까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동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고 철도노조의 2·27 합의안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땐 임.단투와 연계한 대정부 투쟁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밝혀 노.정간의 정면대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김홍열.이정호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