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식 기업모델의 수명 .. 李根 <서울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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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가족 통제하의 기업집단인 '재벌'이라고 불리는 기업모델은 그동안 한강의 기적을 대표했으며,97년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된 바 있다.
그 이후 미국형 기업지배구조로의 개혁논의가 나왔고,이제 구조조정의 성과와 투명성 제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빠지면서 주가가 회복되고 있다.
그동안 경제학계의 주요 논쟁 중 하나는 재벌계 기업과 독립형 기업 간의 상대적 우월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오너경영기업과 전문경영인기업 간의 성과 비교처럼,재벌에 대한 연구 결과도 분석 기간이나 기법,사용 자료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한편 또 하나의 가설은 시장개방과 시장경제의 성숙 등 외부환경의 변화가 집단형 기업의 이점을 떨어뜨려 90년대 이후 재벌형 기업의 성과를 악화시켰다는 외부환경변화 원인론도 나왔다.
최근 필자는 1984∼97년이라는 다른 연구에 비해 긴 기간의 자료를 가지고 재벌기업의 상대적 성과를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이 두종류 기업 간 성과의 격차는 오차한계 내에 들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발견된 사실은 재벌계 기업의 상대적 성과가 약 15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일관되게 악화됐다는 점이다.
또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재벌계 기업에서 오너의 지분이 지속적이고 유의미하게 감소해 '대리인'문제가 심화됐고,이것이 투자 비효율성으로 연결된 것이 문제라는 점도 확인됐다.
필자의 분석방법론은 '같은 노동과 자본을 투입했을 때 얼마나 부가가치를 내느냐'하는 생산적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즉 재벌계 기업은 과다한 자본투자로 같은 양의 부가가치를 만들 때 더 많은 자본을 쓰거나,자본생산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이윤율이라는 재무적 효율성을 기준으로 본 고려대 장세진 교수의 연구결과는 '재벌계 기업은 90년대에도 브랜드나 기술 등 주요자원의 공유,그리고 내부거래 등에서 여전히 추가적 이득을 누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가지 연구 결과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 '기업집단'이라는 기업모델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것이 아니다.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
이는 집단형 기업이 갖는 어떤 이점이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표적 기업의 하나인 GE도 고도로 다각화된 집단형 기업과 유사한 구조다.
집단형 기업이 갖는 이점 중 상당한 정도가 개도국과 같이 시장기구가 불완전한 경우 이를 채워주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이 성숙하면 없어질 것이긴 하지만,새로운 사업 분야나 시장으로의 진입 시 초기 위험을 분산하고,자본조달이나 브랜드 이점의 활용 등은 상당한 정도 계속 존재할 수 있는,특히 선발기업을 좇아가는 추격기업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이점이다.
다만 집단형 기업의 경우,소유구조 면에서 소수 지분을 가지면서도 계열사 지분끼리 얽힌 피라미드형 구조로 인해 거대한 제국을 지배하는데 생기는 '지배는 하나 책임을 안질 수 있는' 경제학 용어를 쓰면 '대리인'문제와 종종 결부되는 것이 문제다.
방만하게 투자를 해도 망하면 '소수의 지분만큼만 책임지거나 손해'를 보는 반면,성공하면 '그로부터 나오는 보상은 다 이 통제자 몫'이라는,감시받지 않는 대리인에게 발생하는 문제가 '과도한 투자 충동과 부실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이런 투자충동을 견제할 수 있는 지배구조와 투명경영 책임경영이다.
정리하면 투명하고 책임지는 경영을 통해 투자비효율성 등의 대리인 비용을 막을 수 있다면,집단형 기업모델 자체가 열등한 조직형태는 아니며,특히 후발 추격 기업에는 상당히 유효한 기업모델이다.
지분이 많고 적음을 떠나 '기업을 책임지고 경영한다는 의미에서의 주인'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다.
다만 이 주인을 적절히 견제하고 깨끗하게 하는 장치만 있다면,집단형 기업조직이 추격국에는 매력적인 기업모델이 된다.
이는 중국을 포함한 여러 신흥국 경제에 많은 기업집단이 자연스럽게 출현하고 있는 현상이 증명하고 있다.
kennet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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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