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일본의 유통업계가 비틀거리고 있다. 세계 소매업계 50위권 안의 다이에 마이카르 세이유 등 굴지의 유통업체들이 채권은행의 구제금융이나 점포 매각 대금으로 연명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다. 왜 그 지경에까지 내몰렸을까. 전문가들은 인플레형에서 디플레형으로 변화하는 소매시장의 큰 흐름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디플레형 소매업의 특징은 대략 몇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소매시장의 수요를 공급이 초과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상품가격은 하락한다. 상품구색은 잡다하게 펼치는 '버라이어티형'이 아니라 대상 고객에 초점을 맞춘 '집중형'으로 바뀐다. 즉시 발주와 즉시 배송이 이뤄져야 한다. 중앙 집중형 머천다이징(상품매입 및 관리의 전 과정)이 아니라 개별 점포에 권한을 넘기는 지역 분권형 머천다이징이 요구된다. 소매업의 생산성을 점검하는 기준도 평당 생산성에서 종업원 1인당 및 시간당 생산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매뉴얼이 필요하다. 최고 경영자는 자기자금형의 경영자세를 지켜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현금유동성(cash-flow)을 중시하는 경영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디플레 시대 소매기업의 생존 키워드는 탄력성과 유연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플레형 소매업의 특징인 △과다한 재고 △백화제방(百花齊放)식 상품구색 △본부 집중주의 △평당 생산성 중시 △자산축적형 경영 등을 버리지 않고는 디플레형 소매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가설이 일본에서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백화점과 할인점들은 올들어 예상 밖의 소비증가에 다소 흥분된 상태다. 오프라인 점포만 그런 게 아니다. 온라인과 TV홈쇼핑 업체들도 매출 호조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소매시장도 포화점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할인점과 TV홈쇼핑 시장은 향후 3년 이내에 구조재편의 격랑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통 대기업들이 '이카루스의 날갯짓'을 모방하지 않길 바란다.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