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세계박람회 무대에 첫선을 보인 것은 1889년 프랑스에서 열린 파리 세계박람회에 참가하면서부터다. 이 박람회 참가 전에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박람회에 조선백자 여러 점을 출품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이 국가관을 마련하고 처음 참석한 박람회는 1893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였다. 컬럼버스의 미국 대륙 발견 4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시카고 박람회는 전세계에서 72개국이 참여했다. 당시 시카고 박람회의 공식 보고서를 보면 "개막 이틀 후인 5월3일 조선의 화물 83개가 하역됐으며 이 가운데 68개가 전시관인 메뉴팩처스 빌딩에 옮겨졌다"는 기록이 있다. 정부 공식 대표는 고종 황제로부터 "미국 박람회 출품사무대원(出品事務大員)"이라는 직책을 부여받은 문신 정경원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때 우리나라 최초의 음반취입이 있었다는 점이다. 시카고 박람회 이후 한국이 박람회 역사에 다시 등장한 것은 1962년 미국 시애틀 액스포(EXPO) 때였다. 이어 1967년 캐나다 몬트리올 엑스포에 참석함으로써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의 모습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1970년대에 들어 아시아 최초의 종합박람회인 일본 오사카 박람회에 가장 큰 규모로 참가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82년 미국에서 열린 녹스빌 박람회에는 "한국의 새로운 지평"이란 주제로 5백81평 규모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이 개최한 첫 박람회는 1958년 산업박람회였다. 이 박람회는 건국 10주년 기념 사업 중 하나로 기획됐으며 국내 산업을 부흥시키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82년 이래 격년제로 서울 국제무역 박람회를 열고 있지만 이는 엑스포와는 다른 상업적인 목적을 지닌 국제무역전시회다. 93년 개최된 대전 엑스포는 한국이 1893년 엑스포에 참가한 지 꼭 1백년만에 주최하는 것이었다. 대전 엑스포는 총 1천4백여명이 참관,국민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심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