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몸체와 이를 감싸는 마당으로 이뤄진다. 요즘 도심주택구조는 이같은 안팎의 골격을 갖춘 집이 흔치않다. 아파트같은 거대한 모듬살이 주택이 도시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아파트도 크게 보면 몸체와 마당의 안팎구조를 이루고있지만 과거 전통주택에서 느껴지는 포근함과 은근한 매력은 크게 떨어진다. 경기도 분당구 이매동 변두리 야산 자락에 아담한 모양으로 들어선 "한솔집". 겉모양은 전형적인 요즘 지어진 현대식주택이지만 도심주택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향취를 가진 집이다. 한솔집은 마당과 길,바닥과 벽을 주제로 엮어낸 집이다. 집을 이루는 요소를 추려내 이들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설계했다는 게 건축가의 설명이다. 물론 이들 요소가 갖는 의미를 거주자나 방문객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건축가가 풀어낸 각자 공간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오히려 이 집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단순한 사각형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만든 외관에서는 야무진 조형미가 묻어난다. 이 집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거대한 몸체나 화려한 외모가 아니다. 마당과 길이다. 건축가는 이것을 "다섯길 아홉마당"이라고 압축한다. 집 안팎의 모든 공간은 각각의 길과 마당이 만나서 형성되고 이들은 또다시 사람들에게 많은 사고와 기억을 남긴다. 골목마당 주차마당 잔디마당 살림마당 우물마당 하늘마당 정자마당 흙마당 물밭마당-아홉마당. 눈길 바람길 물길 걸음길 다섯길. 이름만으로도 정감이 넘치는 이들 마당과 길이 모두 집안에 들어있다. 마당은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몇 평짜리 "땅뙈기"를 동반하는 형태는 아니다. 이 집의 시작은 한가운데 위치한 우물정원 하늘마당이란 중심마당에서 시작된다. 마당을 중심으로 각각의 거주공간들이 발길따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건물 전체를 엮어주는 얼개의 핵심이다. 집 중앙에 우물모양으로 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울러 하늘을 받아들이는 열린 공간이란 뜻이기도 하다. 하늘마당을 중심으로 1층에서는 응접실과 주방 식당 등의 공용공간으로 이어진다. 식당에서는 다시 흙마당이란 외부공간이 붙어있다. 중간에 데크가 있어서 산책삼아 흙마당을 즐길 수 있다. 흙마당은 사실 말이 마당이지 집 밖의 야산과 연결된 공터를 맞붙인 것이다. 자연을 직접 만지면서 느끼고 싶을 땐 그냥 걸어나가면 된다. 1층의 응접실에서는 또 앞쪽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잔디마당으로 연결된다. 이 집의 벽들은 사람을 위압적으로 막아서는 법이 없다. 마당과 방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고 각자의 공간을 보호하는 "보호막"역할을 한다. 길을 따라가면 마당이고 방이고 식당이다. 마당은 다시 사람을 거실로 안내한다. 열린듯하면서도 폐쇄적인 공간의 조화가 이채롭다. 식당 거실 응접실 침실 등 거주공간의 벽에 모든 박힌 창문들은 나지막하게 위치해 있다. 되도록이면 높게하고 폐쇄적인 모습으로 굳어지려는 기존 주택모습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이로써 창문에는 항상 시시각각 변하는 새로운 풍경이 걸려 있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눈길만 주면된다. 설계자가 배려한 이른바 "눈길"이란 개념이 바로 이런 것이다. 바람길 물길 걸음길이라고 붙인 "길"들은 이처럼 한편으론 추상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매우 구체적이다. 바람길은 내외부로 소통성이 강한 이 집에 싱그러운 바람이 집안 곳곳에 닿는다는 의미다. 결코 과장이 아닌듯 싶다. 각 층을 연결하는 깊숙한 계단까지도 부드러운 솜털바람이 맺혀 있는 듯하다. "걸음길"도 마찬가지다. 집안 곳곳에 마당을 두고 마당과 작은 통로로 연결시켜 걸음걸이의 즐거움이 생기게 했다. 1층 입구도 옆으로 비틀어 만든 데크를 따라 걷도록했다. 오르면서 잠시나마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집안 정원에 물을 끌어들인 물길,우물정원의 깊이가 다섯길 깊이가 정도로 만들었다해서 붙인 다섯길 개념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서른평정도의 아담한 주택 한솔집. 작지만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잔잔한 이야기와 사연을 담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 건축메모 규모:대지면적-150평,건축면적-30평,연면적-85평,지상2층 지하1층. 위치: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구조-철근콘크리트,건축비용-평당 만원 설계:주명건축사사무소 허서구 (031)771-6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