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유력 후보들의 이념적 입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논의는 대체로 좌파와 우파,또는 보수와 혁신이라는 이념적 축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그런 이념적 축들은 모두에게 익숙하고 복잡한 이념을 간단하게 제시한다. 아쉽게도 그것들은 구체적 정책들의 합리성을 판별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일에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정책들에 스며든 민중주의(populism)를 드러내는 일이다.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사조는 민중주의다. 대부분 시민들이 받아들인 상식들로부터 '개혁'이란 명분 아래 시행되는 정책들에 이르기까지 민중주의에 젖지 않은 구석이 없다. 민중주의는 1890년대 미국 '민중당 (Populist Party)'이 내건 정치·경제적 이념들을 가리켰다. 그런 민중주의가 오늘날엔 특정 이념이나 정책과 연관돼 쓰여지기보다 사회 문제들에 대한 단순주의적 태도와 접근 방식을 가리킨다. 단순주의(simplism)는 '어떤 일의 한 측면만 고려해서 다른 모든 요소와 측면은 배제하는 경향'을 뜻한다. 단순주의의 특질을 지녔으므로 민중주의는 어떤 문제가 놓인 사회적 맥락을 보지 못하고 문제 자체에만 눈길을 주며,그 문제의 원인들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는 적이 드물다. 그래서 사회 문제들에 대한 민중주의의 처방은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으며 부정적 효과들을 불러온다. 불행히도,그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민중주의는 늘 인기가 높다. 민중주의적 정책들은 간단하고,또렷하고,이해하기 쉽고,직관에 맞는다. 무엇보다도,그것들은 구호들로 표현하기에 아주 좋다. 자연히 실제로 시행되는 정책들은 대부분 민중주의적이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잘 시행될수록,그래서 여론이 국정에 잘 반영될수록 민중주의는 세력이 커진다. 우리의 경험을 살펴보더라도,권위주의적 정권에서보다 민주적 정권에서 정책들은 민중주의적 빛깔을 훨씬 짙게 띠었다. 현 정권이 들어선 뒤 이런 경향은 한결 깊어졌다. 찬찬히 들여다보면,현 정권이 '개혁'이란 이름으로 추진한 정책들 가운데 민중주의적이 아닌 것은 드물다. 놀랍지 않게도,그것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자원과 역량을 허비한 채 실패로 끝났다. 최근의 예로는 '학급당 학생수 줄이기 정책'이 있다. 이 정책은 아무런 준비없이 서둘러 시행됐다. 당연히,그것은 갖가지 부정적 '2차 효과들(secondary effects)'을 불렀다. 좁은 운동장이 건물터로 징발되었고,학생들은 한 학기 내내 소음에 시달렸고 건설현장의 위험들에 노출됐고,불운한 학생들은 아직 건물도 서지 않은 학교에 배정됐다. 그런 2차효과들은 이내 '3차 효과들(tertiary effects)'을 불렀는데,가장 두드러진 것은 많은 학생들이 전학을 희망한 것이다. 집에서 멀거나 여건이 나쁜 학교들에 배정된 학생들의 부모들이 전학 허가를 얻으려고 교육청 밖에서 밤샘하는 풍경은 민중주의적 정책의 폐해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런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물론 현 정권이 민중주의적 정책들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민중주의적 경향의 심화엔 보다 근본적 원인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중심세대들은 젊었을 때 마르크스주의에 깊이 젖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본질적으로 단순주의적 이념이니,그것은 이 세상을 아주 단순하고 또렷하게 설명한다. '공산주의'가 실패로 끝난 지금,마르크스주의 정책들을 드러내놓고 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갖추는 젊은 시절에 마르크스주의에 젖은 사람들이 뒤늦게 세계관을 바꿀 리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동질적인 민중주의는 그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다. 원래 민중주의가 호소력이 큰 데다 지금 우리 사회의 중심세대들이 민중주의에 호의적이므로 민중주의를 막아내기는 힘들다. 그래도 우리는 그 일을 꾸준히 해야 하고,대통령 후보들이 내건 정책들의 점검은 그 일의 중요한 부분이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