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서초동 시대를 마감하고 법조인 양성의 '산실'로 새롭게 자리잡은 경기도 일산신도시 장항동 사법연수원. 겉으로 보이는 평온한 풍경과는 달리 이 곳엔 오전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오전 10시 수업을 듣기 위해 서울 강남집에서 새벽 6시30분에 나왔다는 K모씨(30)는 "전철을 타고오면서 1시간 가량 법전을 꼼꼼히 읽으며 예습을 했다"며 "고시 준비 못지않는 긴장감 속에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시합격자 5천명 시대'를 맞으면서 사법연수원은 또다른 '고시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올해 연수원 '새식구'가 된 제43회 9백90여명의 사시합격자들은 합격과 동시에 동기생들간의 경쟁에 곧바로 돌입했다. 경남 양산의 지방대인 영산대학이 서울 강남의 법무대학원에 사시합격자들을 위해 올해 처음 개설한 '사법연수원 준비 특별과정'에 신청한 합격자들이 1백여명에 이르렀다는 데서 이들의 강박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수 있다. 사법연수원 성적을 염두에 둔 나머지 입소 전에 연수원교육 과외를 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처럼 여겨지고 있다. 졸업을 앞둔 2년차 연수원생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연수원 2년차인 B모씨(29)는 "연수원 성적으로 진로가 결정되기 때문에 시험을 앞두고는 '피말리는' 밤샘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사법연수원생들이 이처럼 치열한 공부 '전쟁'에 몰두하는 것은 연수원 졸업, 즉 변호사 자격증만으로 모든게 해결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판.검사임용이나 매력적인 대형로펌 취업이라는 '진짜 관문'을 통과하는데 무엇보다 연수원졸업 성적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올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31기 연수원생중 예비판사와 검사로 임용된 2백여명(예비판사 1백15명, 검사 89명)의 등위 하한선은 전체 7백12명중 약 3백40등선. 지난해 3백90등선에 비해 50등 가량 높아졌다. 게다가 대부분의 로펌들마저 연수원 졸업생 채용 수를 줄여 '취업난'이 더욱 가중됐다. 상황이 이렇자 아예 법조계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연수생이 늘어 지금까지 30여명이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삼성그룹 등에 취업이 확정됐거나 내정됐다. 연수원의 모 교수는 "'외도'조차 연수원 성적이 좋지 않으면 쉽지 않다"며 "조만간 임용은 고사하고 취업을 걱정하는 연수원생들을 보게 될 것 같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지법에서 실무교육을 받고 있는 연수원생 S씨(29)는 "최근 전국 개업변호사 수가 5천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변호사와 사시합격자 수가 늘어날수록 연수원은 임용과 취업을 위한 각박한 생존경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