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학생, 노동운동가, 8년간의 수감생활과 대통령 수석비서관을 거쳐 보건복지행정의 수장까지' 이태복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력을 보면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을 집약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장관은 취임 첫날부터 밖을 향한 행정보다는 복지부 내부 혁신에 몰두해 왔다. 그는 청와대 수석 시절부터 집권 후반기에 나타나게 마련인 관료의 복지부동을 예방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행정개혁이라도 제대로 펴기 힘들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 같다. 취임 첫날부터 잠자리를 아예 집무실로 옮긴 것이나 자신의 봉급 일부를 '우수제안자' 포상을 위한 상금으로 내놓은 것 등은 모두 관료개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매주 화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직원들이 오후 6시에 반드시 퇴근토록 하고 의사출신 서기관을 핵심 과장자리에 앉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만난 사람 = 이동우 < 사회부장 > ] ----------------------------------------------------------------- 이 장관은 재야 출신이라기보다는 기업인 출신으로 여겨질 정도로 이른바 '행정의 경영화'를 염두에 둔 '창조적인 파격'을 복지부에 불어넣고 있다. 그 과정에서 관료텃세에 부딪쳐 '너무 튄다'는 내부불만도 들었고 '아이디어가 돋보이고 열성적이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청와대 노동복지수석으로 있다가 행정부처 장(長)으로 자리를 옮긴지 두 달이 된 이태복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건강보험 의약분업문제 등 현안에 대한 정책방향과 바이오산업 육성을 비롯한 장기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청와대에서도 노동복지수석으로 같은 일을 했는데 복지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달라진 점이 뭔지요. "수석으로 일할 때보다 일선 복지현장을 챙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전반적인 정책방향을 다루는데 반해 복지부는 구체적인 현안을 파고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정책이 그렇지만 국민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는 복지행정의 경우 특히 현장과 수시로 피드백(feed-back)이 이뤄져야 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탁상행정이라는 우를 범하게 되지요" -의약분업을 실시한 지 21개월이 지났습니다만 아직 정착되진 못한 것 같습니다. 분업 이후 오히려 국민의 불편이 가중됐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의약분업제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큰데 우리의 경우엔 거의 완벽한 형태의 의약분업체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분업을 지향하다보니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부작용이 있다면 제도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의약분업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 의향이라도 있으신지. "의약분업제도의 틀을 바꾸면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고 봅니다. 부족하거나 미비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는게 중요하지 이를 원점으로 다시 되돌리면 국민들만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의료계와의 갈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인하된 의료수가에 대해 의사들의 반발이 큰데요. "수가가 인하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받아들이는 충격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보건정책이 궁극적으로 의료계의 협조가 있어야만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가인하 조치 역시 의사들이 불필요한 진료행위를 줄여 나가야만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제약업계도 문제입니다. 아직도 약값에 거품이 많다는 지적은 어떻게 보십니까. "맞는 말입니다. 국내 제약회사는 유통회사 수준에 머물러 있는게 사실입니다. 연구개발 기능은 거의 퇴화한 것 같아요. 국민의 부담을 줄이는 측면뿐만 아니라 제약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약값의 거품은 빠져야 한다는게 제 소신입니다. 약값은 낮추는 대신 외국수출 등을 통해 국내 제약사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인 지원책이 마련되고 있는지요. "이미 큰 틀은 짜여져 있는 상태입니다. 제약산업을 포함해 바이오산업(BT) 전반에 대한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있습니다. 지원대책은 특히 기술개발(R&D) 분야에 집중할 방침입니다. BT는 효과가 나타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만큼 지속적인 투자가 관건입니다" -이번 정부 들어 시행된 복지정책에 대해 개인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김대중 대통령 취임이후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고 봅니다. 외국 전문가들이 '복지의 기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정도입니다. 구체적인 수치로도 이런 점은 드러납니다. 보건복지 예산의 경우 국민의 정부 출범 이전 2조7천억원대에서 지난해 말에는 7조5천억원 수준으로 늘어났고 경로연금 대상자도 27만명에서 58만명으로, 생계비 지급대상도 37만명에서 1백50만명으로 확대됐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만한 변화가 별로 없다는 반론도 있는데. "우선 복지ㅓ??극빈층에 집중돼 중산층이 별 혜택을 느끼지 못해서 그럴 겁니다. 앞으로는 중산서민층으로 복지정책을 확대·실시해 이같은 점을 보완해 나갈 겁니다. 또 국민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던 것도 주요한 원인입니다. 행정도 이제는 '자기 PR'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요" -관료시스템에 문제가 있어 행정이 제대로 안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주변환경의 변화속도를 관료시스템이 따라 가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복지행정의 목표가 갑자기 '업그레이드'되면서 이를 운영하는 관료들의 피로가 누적됐고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벌이다보니 시행착오도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료시스템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있습니까. "현재의 복지시스템이 뿌리내리도록 지방자치단체간 경쟁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분기별로 행정서비스 순위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실시 시기는 지자체 선거가 끝나는 올 하반기부터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병원 평가를 위한 법적근거를 마련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정리=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