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권제적 유산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출범 11년째를 맞는 지방자치제에 대한 서울대 안청시 교수의 총평이다. 안 교수는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인사,예산,업무등 상당 부분에서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민선단체장의 선심성 예산낭비등 재정운용의 난맥상도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관선시대로 되돌아가는 편이 낫겠다"는 자조섞인 비아냥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부의 지방자치제 시행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는게 안 교수의 주장이다. 이와관련,한국경제신문은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사회과학연구원) 한국행정연구소(행정대학원)와 공동으로 8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아시아의 지방자치 개혁에 대한 비교연구"란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연다. 다음은 "지자제 시행 11년" 평가내용. ◇민초정치의 싹은 돋았다=서울대 안청시 교수는 지방자치제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고양시민의 러브호텔 난립저지 운동'을 꼽았다. 주민들이 단순한 행정서비스의 객체에서 능동적 참여자의 모습으로 바뀐 대표적 케이스로 이 '사건'을 들었다. 지자제 실시 이후 의사결정구조도 다양화됐다. 서울대 임도빈 교수는 "지자제의 가시적 효과는 중앙중심의 일극 의사결정구조를 광역 15개,기초 2백60개의 다극 의사결정체제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의의 대변자가 수적으로 증가한 것을 두고 '풀뿌리 민주주의'가 착근하는 과정에 들어섰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이광희 박사는 "지난 61∼90년 사이 국민들은 단지 2백∼3백명의 국회의원만 뽑을수 있었지만 지자제 부활 이후 5천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선출직 공직자를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면서 지방의 주인이 중앙으로부터 점차 지역주민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의 정치참여가 늘어난 점도 지자제 실시후 눈에 띄는 변화중 하나다. 실제로 여성 국회의원(14대 8명→16대 16명)과 지방의회의원(91년 48명→98년 97명)이 곱절로 늘어 지역 살림꾼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은 "지자제 실시로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영역은 여성의 정치참여 증진"이라고 평가했다. ◇주민참여 확대등 해결해야 과제가 산적해 있다=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보완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안 교수는 현재 지자제의 문제점으로 △취약한 재정자립도 등 중앙집권제적 잔재 온존 △무책임성과 부정부패 △방만한 재정운용 등을 들었다. 안 교수는 "지방분권화에 반대하는 반자치론자들이 이런 문제점을 근거로 지자제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런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CEO형 단체장들의 섣부른 시장메커니즘 도입으로 지방경제가 침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지역 주민들의 낮은 참여의식도 지방자치제 정착에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손봉숙 이사장은 "관련 법률의 미비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주민투표제와 주민소환제,주민발의제 등 방안을 즉각 도입해 지방자치제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를 확대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