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암의 경제포인트] '산업생산의 虛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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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현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
전경련의 3월 기업 경기실사지수(BIS)는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라고 한다.
한국은행의 올 2.4분기 기업경기조사에서도 체감경기가 빠르게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올해 1~2월중 수출은 전년동기 대비 13.2% 감소했다.
수출이 두 자리 수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체감경기가 급격하게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미국 경기의 회복을 들고 있으나 교역조건의 변화가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겠다.
교역조건은 수출단가를 수입단가로 나눈 값이다.
우리나라의 교역조건은 반도체가격 하락과 원유가격 상승으로 지난 2년간 급격히 악화됐다.
해외시장에서 수출가격이 하락하면 기업들이 수출에 애로를 겪게 되는 한편 상대적으로 비싼 수입품을 더 많이 생산하려 한다.
즉 기업들은 불리해진 교역조건에 따라 생산을 조정하기 때문에 산업생산은 교역조건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줄어들지 않는다.
올해 1~2월중 수출이 두 자리 수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산업생산이 호조를 보인 것은 내수가 확대된 탓도 있지만 수출기업들이 불리한 가격조건에서도 물량을 줄이지 않으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생산이 유지된다고 해서 기업의 체감경기도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수출가격이 하락하면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이 줄어들기 때문에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국민들의 실질구매력이 줄어들게 된다.
즉 교역조건 악화시 기업들의 생산조정으로 지표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실질구매력이 감퇴하기 때문에 체감경기가 나빠지게 된다.
교역조건의 변화에 따른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를 나타내기 위해 한국은행에서는 국내총생산(GDP)뿐만 아니라 국민총소득(GNI)을 작성해 발표하고 있다.
GNI는 국민의 실질생산량에서 교역조건의 변화에 따른 실질구매력의 변화를 차감한 것이다.
교역조건이 악화되면 GNI가 GDP보다 낮아지게 되며, 반대로 교역조건이 개선되면 GNI가 GDP보다 높아지게 된다.
교역조건의 변화가 체감경기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살펴보자.
2000년에는 GDP가 9.3%나 증가하였다.
그러나 기업경기실사지수(BSI)와 소비자동향지수(CSI) 등으로 측정된 체감경기는 좋지 않았다.
2000년에는 교역조건이 12% 악화되었는데 이를 반영한 GNI 증가율은 3.6%에 불과했다.
즉 2000년에는 GDP로 측정된 지표경기가 매우 좋았으나 GNI로 측정된 체감경기는 좋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해에도 교역조건이 5%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GDP는 3% 증가했으나 GNI는 이보다 낮은 1.3% 증가에 그쳤다.
주목해야 할 점은 지난해에도 교역조건이 크게 악화되었으나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와의 차이가 2000년에 비하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교역조건이 지속적으로 나빠질 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교역조건이 악화되면 국민의 실질구매력이 줄어들어 당해 연도에 체감경기가 악화될 뿐만 아니라 산업생산을 위축시켜 이듬해에는 지표경기도 악화된다.
그러나 교역조건은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으므로 체감하지 못한다.
마치 빠르게 달리는 기차안에서 속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올해에는 반도체 가격이 안정되면서 교역조건 악화 행진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달리는 기차에 제동이 걸리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속도감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미 작년 4.4분기의 GNI 증가율은 GDP 증가율에 근접했다.
체감경기의 급속한 회복이 교역조건의 개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 홍익대 무역학과 교수 wapark@hongik.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