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바꿔야 '경제'가 산다] 3부 : (4) 모니터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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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얼마전 '판공비 남용사건'으로 전국이 들끓었다.
유럽 물류의 중심지인 로테르담시 간부가 지난 16년 동안 공금을 남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로테르담 반 라벤스타인 시의원이 예산을 방만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 86년부터 시 고위간부를 지낸 21명에 대해 조사를 추진한 결과 페퍼 전 시장(당시 내무장관)의 판공비 남용혐의를 밝혀낸 것이다.
그의 판공비 남용금액은 우리돈으로 4백만원 정도.
개인 휴가시 법인카드로 1백80길더(9만여원)를 인출했고, 8백84길더짜리 술을 구입했으며, 식사비로 9백95길더(50여만원)를 사용한게 그 내역.
'16년간 4백만원' 상당의 개인착복은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논란의 대상조차 되지 않을 적은 액수다.
그러나 그는 이 일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대가성이 없었다는 이유만 내세우면 수억원의 뇌물을 받아도 현직을 유지하는 우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게 분명하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에 대한 신뢰의 문제"(사스키아 스티벨링 감사원장)인 것이다.
헨센 내무부 정당국장은 "최근 10년간 정부 각료나 정치인이 개입된 대형스캔들은 단 한건도 없었다"며 "그러나 정당의 소득을 좀 더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게 국민의 요구"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공직자의 높은 도덕성과 국민들의 부패척결 의지가 '작으나 강한' 오늘의 네덜란드를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는게 그의 분석이다.
이같은 노력은 비단 네덜란드만의 얘기는 아니다.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Corrupt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은 청렴하고 깨끗한 싱가포르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총리실 직속으로 독립성이 부여돼 있는 탐오조사국은 비리공직자에게는 '저승사자'로 불린다.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는 총애했던 한 장관이 뇌물수수혐의로 CPIB에 적발되자 그를 불러 "재판에 회부될 것"이라고 통보했고, 관련 장관은 자살의 길을 택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조사국은 권력형 비리와 뇌물수수, 공직기강을 해치는 행위 등에 대한 수사를 벌이며 범죄혐의가 인정되거나 신빙성 있는 정보가 접수되면 영장없이 혐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자금세탁을 막기 위해 기업과 개인의 은행계좌추적권도 갖는다.
지난 20여년동안 고위 공직자가 관련된 비리사건이 거의 없었던 것은 리 전 총리가 자서전에서 "부패방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강력히 추진해온 부패척결 노력의 결실인 셈이다.
난양공대(南洋工大) 박동현 교수(경제학)는 "싱가포르의 국가경쟁력은 정부가 단호한 반부패정책을 펼치고 부정부패방지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투명성을 유지한게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호주의 경우도 감시기능이 상당히 철저한 국가다.
호주 선관위는 정치인, 정당들이 신고한 정치 비용에 대해 현장 실사까지 나가 영수증을 대조하면서 확인할 정도다.
언론은 호주 정치인 부패의 또다른 '워치도그(watch dog)'다.
정치부패 스캔들에 대해서만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언론의 끈질김이 부패한 정치인들이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일례로 97년 멀 콜스핀 상원 부의장은 43일간의 여행경비 지출보고서에 약 7천호주달러(한화 4백90여만원)를 과다계상했다는 이유로 부의장직은 물론 14년간 유지해온 의원직을 내놓아야 했다.
98년 당시 피터맥고란 과학성 장관은 1천4백62호주달러(한화 1백여만원)의 여행경비를 잘못 계상해 사임했다.
부패없는 곳에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헤이그=이재창 기자 캔버라=홍영식 기자 lee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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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 김영규 정치부장(팀장) 오춘호 김형배 이재창 홍영식 김병일 김동욱 윤기동 기자(정치부) 고광철(워싱턴) 특파원 강혜구(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