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험한 길을 달려 왔습니다. 훗날 경제 사가(史家)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두렵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대우차 매각 본계약 타결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9일 기자와 만난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 한쪽에는 GM측과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검토했던 갖가지 서류뭉치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기록을 남겨둬야 할 것 같아 협상내용을 일지(日誌)형태로 정리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몇년 뒤 상황논리의 변화로 혹시 '헐값 매각'시비가 나오면 최소한의 '방어'는 해야겠다는 일종의 '준비'라고 말했다. 세간의 평가가 변덕이 심하고 경제외적인 변수도 많이 작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업은행의 이런 고심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사실 산업은행은 1999년 8월 대우차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한 이후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대우차 매각은 건국이래 최대의 국제 M&A(인수·합병)였고 한국 구조조정의 대외신인도를 가름하는 시험대였다. 2000년초 GM 포드 현대자동차 등이 입찰전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매각작업은 순조롭게 끝날 듯했다. 그러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포드가 중도에 탈락하자 매각환경이 급변했다. 유일한 원매자로 남은 GM은 협상의 주도권을 틀어쥐었고 산업은행은 '조기 매각' 압력속에서 최적의 조건을 모색해야 하는 지경에 빠졌다. 작년 9월 천신만고 끝에 양해각서를 체결하고도 숨 돌릴 틈이 없었다. GM측이 정밀실사를 근거로 우발채무 해소를 요구하고 인수가격의 대폭 할인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협상을 계속하든 결렬시키든 최종 책임은 산업은행의 몫이었다. 수 많았던 '훈수꾼'들은 정권 말기라는 '정세 판단'에 충실해서인지 어느 순간 다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일지 작성은 이같은 '고독감'에 대한 반작용인지도 모른다. 기자는 이제 산업은행이 '당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기를 바란다. 산업은행은 앞으로 GM과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대우차를 본궤도에 올려야 한다. 대우차의 조기 정상화야말로 미래의 사가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는 첩경일 것이다. 조일훈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