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보물은 어린 생명"..48년만에 한국 떠나는 나길모 주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국 천주교의 마지막 외국인 주교인 인천교구장 나길모 주교(76·본명 굴리엘모)가 오는 25일 최기산 주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한다.
1954년 메리놀외방전교회 선교사로 한국에 온 나 주교는 청주교구 장호원·북문로·내덕동 성당을 거쳐 61년 인천교구 설정과 함께 초대 교구장으로 착좌,지금까지 봉사해왔다.
한국생활 48년,교구장으로서만 41년이다.
사제품을 받은 이듬해 한국으로 왔던 벽안(碧眼)의 청년 선교사는 할아버지가 돼 다음달 중순 미국 보스턴 근교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한국전쟁 직후의 가난한 시절 처음 이 땅에 왔는데 그동안 이룬 경제성장은 참으로 큰 기적입니다.
지난 68년 서울~인천간 고속도로가 개통된 뒤 한국 전체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던 것도 생각나는군요.
가난해서 먹을 것도 없던 상태에서 우리 힘으로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기 시작한 걸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러나 그 때에는 가난했지만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서로 돌봐주는 공동체 분위기가 있었어요.
공동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공동체 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죠"
노(老) 사제는 "돌아보니 온통 아름다운 추억뿐"이라며 그 중에서도 이웃이 한식구처럼 지내던 정을 첫손에 꼽는다.
고층 아파트 숲에 사는데다 이사를 너무 자주 다녀 이젠 예전같은 공동체를 만들기가 어렵다고 아쉬워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집집마다 자녀가 4∼5명씩 됐지만 지금은 외아들 외딸이 대부분인 것도 그를 안타깝게 한다.
가족과 이웃보다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낙태 불임이 너무 심해요.
이것은 우리나라(한국)를 위해서 좋지 않은 일입니다.
젊은이 숫자가 줄어들고 노인이 늘어나는데 20년 후에는 노인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젊은이들이 내야 할 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보물은 넓고 화려한 아파트도 고성능 자동차도 아니고 바로 하느님이 주시는 어린 생명입니다"
귀화 식물도 오래되면 토종이 되는가 보다.
나 주교는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문제점이 뭐냐고 묻자 생명경시 풍조와 함께 과소비 낭비풍조를 든다.
"최근 신문 보도를 보니 1년간 음식쓰레기 양으로 북한 동포를 다 먹일 수 있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부모님이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겪는 것을 직접 본 데다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아침에 먹다 남은 수프를 저녁에 데워서 먹는 그로선 용납하기 어려운 세태다.
"십계명은 종교와 관계 없이 사람들의 양심에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한데 이를 없애야 합니다.
특히 정치 부문이 깨끗해져야 해요"
반평생을 살아온 인천지역에 대한 걱정도 많다.
나 주교는 "경기은행 퇴출과 대우자동차 문제로 어려운 이웃이 너무나 많아졌다"면서 "일은 김우중 회장이 저질러 놓고 왜 죄없는 노동자들이 고생해야 하느냐"며 안타까워한다.
인천이 서울 바로 옆에 있어서 발전이 느리고 손해본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인천에서 번 돈을 서울에 가서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에 대해서는 "신자도 많이 늘었지만 쉬는 신자(냉담자)도 많아서 걱정"이라며 "영세받은 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92년 18%였던 냉담자 비율이 지금은 31%로 늘었기 때문이다.
"고향에 돌아가면 장남인 저 대신 부모님을 모신 여동생 집에서 함께 살 겁니다.
우리 집은 대가족인데 여동생들과 남동생에게서 난 조카가 15명,손자가 37명이나 돼요.
생명 해방을 이룬 집이죠.그리고 메리놀회 본당에 나가서 선교기금도 모으고 사제가 부족한 곳의 일손도 도와야지요"
나 주교는 "한국은 힘이 있는 나라여서 얼마 안 가서 큰 나라가 될 것"이라며 "한국을 또 찾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마지막 외국인 주교라는 점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대부분이 외국인 주교였는데 이제는 한국 선교사를 미국에 보내야 할 것"이라며 한국에 오기 전 파견예식에서 받은 선교십자가를 들어보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