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돈키호테' 앞에 대적할 자는 없다. 늙은 '로시난테'를 타고 돌진해 오는 저돌성에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연적(戀敵)도 꽁무니를 뺀다. 무모함의 정신이야말로 '사랑의 역사'를 관통해 온 주인공이었다. 육상효 감독의 데뷔작 '아이언팜'은 5년전 떠난 애인을 찾아 미국에 온 '한국돈키호테'의 이야기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다. 그의 로시난테는 '전기밥솥'이고 창(創)은 '밥통권법'이다. 우스꽝스런 무기들로 무장한 그는 '한 여인과 두 남자의 동거' '한.미 문화의 충돌' 등 낯선 코드의 험로를 지나 거대한 풍차 같은 연적과의 한판 승부를 벌인다. 미국 이민사회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아메리칸드림의 그늘'로 어두워지지 않고 '사랑의 찬가'로 밝아졌다. 제명 '아이언팜'은 뜨거운 모래 속에 손을 담금질하는 철사장(鐵砂掌)을 뜻한다. 여기서는 주인공(차인표)의 미국식 이름이자 그가 사랑의 고통을 견뎌온 방식을 상징한다. 그는 옛애인 지니(김윤진)가 생각날 때마다 뜨거운 전기밥솥에 손을 넣고 아픔을 참아 왔다. 아이언팜은 소주를 좋아하는 지니를 찾아 술집을 전전한 끝에 마침내 소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지니는 자신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 줄 새 애인 애드머럴 리(찰리 천)와 열애중이다. 성공한 사업가 애드머럴과 결혼하면 그녀가 원하던 소주칵테일 바와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언팜과 애드머럴은 1주일에 3일씩 지니와 동거할 권리를 얻는다. 애드머럴이 미국을 대변한다면 아이언팜은 미국 속 한국문화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애드머럴은 깡패를 동원해 '이방인' 아이언팜에게 뭇매를 가한다. 얄밉고 교활하지만 안락한 생활이 보장된 부유층이다. 아이언팜은 밥솥에서 익힌 '밥통권법'으로 직업과 영주권을 얻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녀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다. 그는 미국인이 되기 위해 한국말을 '비행기의 변기'에 버리고 영어만 사용한다. 하지만 진심을 드러낼 때는 '한국말'을 사용한다. 지니의 생일날 과음했을 때, 지니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 등이 그것이다. 지니의 꿈인 소주칵테일 바는 소주로 대변되는 한국 문화와 서구 문화인 칵테일을 결합한 결정체다. 영화 속에선 미국에 사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이 단계별로 표현된다. 에드머럴은 내이티브 스피커이며 지니는 5년쯤 미국 생활에서 익힌 영어를, 아이언팜은 한국에서 열심히 익힌 '콩글리시'를, 아이언팜과 함께 일하는 택시운전사 동석(박광정)은 오랜 이민생활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일상어에다 '퍽(fuck)' 등 욕설만 배운 수준이다. 차인표는 깔끔한 귀공자에서 '집념의 촌놈'으로 변신했다. 그 캐릭터는 '언밸런스'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우스꽝스럽다. 사랑에 대한 그의 신념은 사실 기반이 허약하다. 그가 믿고 있는 사랑이란 정신적인 교감 없는 열아홉번의 섹스에 대한 쾌감일 뿐이다. 지니를 향한 일념은 '꼭 다문 입술'로 표현되는데 유머 없이 과도하게 굳어져 있는 그의 표정은 닳고 닳은 세상과는 부조화스럽다. 노랑 머리로 철사장을 하고 밥통권법을 구사하는 모습도 그렇다. 19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