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는 테러조직이나 미국이나 '각성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이스라엘의 무력과 팔레스타인 자살폭탄의 비극은 악화되고,인도-파키스탄 간 종교전쟁은 격렬해지고 있다. 9·11테러에서 아랍 내지 이슬람 요소의 비중이 높다. 때문에 문명적·정치외교적으로 이들 요소와 소원해서 얻은 '행운의 평화'를 누리는 황·동해지역도 따지고 보면 자발·자율적 평화구조를 가진 것은 아니다. 국가간 협력체제도 경제에 국한해 '공동체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일뿐,정치·안보에 들어가면 초보적 논의기구마저 없다. 시민사회적 평화의식도 허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는 황·동해지역의 사회 인구 등의 변화는 환경 난민 빈곤 사회해체 등 지구촌적 재앙의 진원지가 될 것이다. 황·동해지역 정치권력자들이나 기업인들이 평화구조와 지역협력 공동체 구성의 통찰력과 지도력만 있다면 황·동해지역은 세계의 시스템을 리드할 위치에 있다. 한·일·중에 홍콩 싱가포르까지 합친 외환보유고는 세계 외환보유고의 60%가 넘는다. 이들의 에너지 수입과 수송을 공동협력 또는 통합하면 세계 에너지 시장질서를 결정할 수 있다. 또 이 지역의 식량수입을 공동으로 구입,수송하면 식량수출국의 힘을 제압할 수 있다. 이들 인구를 합치면 세계인구 4명중 1인은 황·동해인이다. 세계에 가장 많은 해외교포와 유학생을 퍼뜨린 것도 황·동해인이다. 황·동해가 협력·공동체화 되면 세계 경제와 평화질서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실현키 위한 몇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황·동해지역의 시민사회화를 촉진하는 일이다. 이기적인 자유만을 추구하는 동물적인 개인을 탈피,자유 자율의 시민이 주인되는 시민사회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둘째,미래지향 및 과거정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 미래지향의 능력은 한·일 국경을 넘어 황·동해지역의 문제들에 대해 공동으로 지성적·정보적·교육적 하부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빈곤 환경변화 등이 그것이다. 최소한 시민사회 중심으로 이들 공동문제군(Common Problematiques)에 대한 정기적 평가기구라도 출범해야 한다. 셋째,시급하면서도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과제는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빈곤은 테러와 소요와 난민과 환경문제의 중심에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기아와 고통스런 비인간적인 삶에 대해 '인도주의 원칙'에서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시민사회 역량만으로는 해결의 한계가 있다. 넷째,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는 이 지역의 내향화·쇼비니즘·척외(斥外)·민족주의화 경향이다. 한·일시민사회는 이같은 역류를 막기 위해서 과거사 정리에 철저해야 한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뿐 아니라 한·일 한·중 일·중 간에는 특히 근·현대사 인식과 기술에서 큰 편차를 보인다. 근·현대사뿐 아니라 세나라는 모두 역사인식에서 왜곡 은폐 독선 오만이 많다. 한·일시민사회는 양쪽 모두 성찰과 참회를 통해 과거에 대한 책임규명이나 보상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교훈·교육을 통한 미래개척의 차원으로 승화·극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노력이 한·일과 중국,북한정부의 일국주의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삶은 한국과 일본 안에서의 조건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황·동해의 삶의 조건으로 구속됐고,앞으로 더 강하게 구속될 것이다.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중국의 시대라고 한다. 중국이 2020년 미국 GNP보다 큰 '대국'이 된다는 따위의 제국주의적 힘의 중심이라는 뜻이 아니다. 21세기 인류생존 문제들의 발생·전개 중심이 이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다. 황·동해에는 홍익인간(弘益人間·한국)·대화(大和·일본)·화이부동(和而不同·중국)이라는 일상의 시민적 지향이 있다. 황·동해인화(黃·東海人化)와 21세기 지구시민화(地球市民化) 작업은 홍익인간·대화·화이부동의 현대적 재창조다. 한·일시민사회는 21세기 인류문제들을 우리 일상의 삶 속 문제로 포용함으로써 성숙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