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무차입 경영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IMF 외환위기가 가져다 준 뼈저린 '아픔'이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을 짓고 생산라인을 늘리는 확대경영을 선택한 기업도 과거처럼 외부차입보다 내부유보금을 적극 활용하는게 요즘의 기업풍토다. 저금리시대에 불구하고 이같은 무차입 경영 패턴이 자리잡는 것은 문어발식 사업확장 등을 통한 외형 불리기보단 구조조정을 통한 내부 경쟁력 제고에 힘을 쏟은 결과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실속을 챙기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말도 된다. 지난해 경기 침체의 여파로 설비 및 기술투자가 줄어들면서 자금수요가 적어진 것도 차입금이 줄어든 요인중 하나다. 그러나 상당수 기업들은 내실과 함께 불황에 적극 대비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편의 하나로 무차입 경영전략을 채택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투자자 입장에서 부채비율이 낮은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상장사나 코스닥 등록기업을 중심으로 무차입 기업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줄 잇는 무차입기업 =SK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시가총액이 많은 12월결산법인 1백90개(거래소 1백22개, 코스닥 68개)중 작년말 현재 '빚'(차입금)이 한푼도 없거나 빚보다 보유 현금이 많아 사실상 무차입 상태인 기업이 전체의 35.3%인 67개사에 달했다. 올해는 무차입 경영 기업이 75개사로 늘어날 것이라고 SK증권은 전망했다. 차입금이 전혀 없어 완전무차입 상태인 기업도 작년말 29개사에서 올해말에는 35개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차입금 유무에 관계없이 금융비용이 '0'인 상장기업도 작년말 현재 1백개사에 달했다고 증권거래소는 밝혔다. 전체 조사 대상인 12월법인 5백20개사의 19.2%가 금융비용 제로기업인 셈이다. 천일고속 BYC 고려제강 조흥화학 삼영무역 남양유업 등은 지난 99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 금융비용을 한푼도 지출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의 외부 차입금 감소추세는 상장기업의 부채비율 변화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상장기업의 부채비율은 해마다 줄고 있다. 12월결산법인의 평균부채비율(부채총계)은 98년말 2백83.32%(3백66조2천억원) 99년말 1백50.65%(2백98조7천억원) 2000년말 1백45.64%(2백96조원) 2001년말 1백25.93%(2백68조1천억원) 등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부채비율을 줄이려는 노력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이같은 부채비율 감소는 주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차입금보다 보유현금이 많은 기업 =작년말 현재 보유현금이 차입금보다 많아 순차입금(차입금-보유현금)이 마이너스(-)인 기업은 모두 67개사로 나타났다. 올해 순차입금이 마이너스로 돈을 외부에서 빌릴 필요가 없는 기업이 75개사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올해 반도체D램가격 상승과 정보통신 및 가전부문 호조에 힘입어 올 연말까지 6조1천3백80억원의 현금을 보유해 차입금(1조7백69억원)보다 5조6백11억원이나 많은 현금을 갖게될 것으로 예상됐다. KT와 계룡건설은 올 연말 순차입금이 각각 마이너스 1천1백10억원과 마이너스 7백9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유한양행 롯데칠성 한라공조 롯데제과 삼성SDI 태영 화인케미칼 국도화학 웅진닷컴 아세아시멘트 영원무역 자화전자 케이씨텍 삼영전자 등도 차입금보다 많은 현금을 갖게 될 기업으로 분류됐다. 코스닥기업중에는 쌍용정보통신이 1천7백57억원의 현금을 보유, 차입금(3백4억원) 보다 6배 가까이 많을 것으로 분석됐다. 터보테크는 차입금과 현금이 1백억원과 6백50억원으로 순차입금이 마이너스 5백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안철수연구소 테크노세미켐 다산네트워크 퓨처시스템 반도체엔지니어링 신세계I&C 등도 차입금보다 많은 현금을 보유할 기업으로 꼽혔다. 완전무차입 기업 =올해 차입금이 한푼도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거래소 13개, 코스닥 22개 등 모두 35개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SK증권이 1백90개 종목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전체 상장 및 등록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란게 SK증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거래소 기업중에는 신도리코 대덕전자 제일기획 태평양 에스원 대덕GDS LG홈쇼핑 한국포리올 한국전기초자 한국단자 LG애드 극동전선 SJM 등이 완전무차입 경영 기업으로 꼽혔다. 특히 이들 기업 대부분은 주력사업 분야에서 시장지배력이 뛰어난 업종 대표주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추고 있다. 이중 신도리코 에스원 LG애드 등은 지난 99년말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무차입 경영을 일궈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SJM은 작년말부터 무차입 경영에 들어갔다. 당초 오는 2004년까지 분할상환키로 했던 수출입은행 차입금(정책자금) 9억원을 작년 9월말 조기 상환, 차입금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태평양도 작년부터 무차입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96년말 2천7백억여원에 달했던 차입금이 작년 9월말 32억원으로 줄어든데 이어 연말에는 '제로'가 됐다. 설비투자가 마무리돼 풍부한 현금흐름을 갖고 있는 한국포리올은 보유현금이 작년말의 4백85억원에 올해말 6백26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코스닥기업중에는 강원랜드 엔씨소프트 새롬기술 핸디소프트 한빛소프트 휴맥스 옥션 네오위즈 삼영 코리아나화장품 CJ39쇼핑 한단정보통신 등이 무차입 기업으로 분류됐다. 한국정보공학 버추얼텍 모아텍 이루넷 코텍 유일전자 소프트포럼 액토즈소프트 에스넷 미디어솔류션 등도 '빚 없는 기업'에 포함됐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