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평화교육이어야 한다 .. 韓駿相 <연세대 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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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했을 때 세계가 놀랐다.
세계는 한번 더 놀랐다.
뉴욕의 무역센터가 무너져버릴 때였다.
마치 미국의 심장이 균열되는 모습이었다.
9·11 뉴욕참사,바로 이 사건은 앞으로 이 세계에는 그 무슨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 서막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9·11 뉴욕참사를 반문명적 테러행위라고 비난했지만,오사마 빈 라덴은 달랐다. 그들은 뉴욕침공을 바로 새로운 유형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부시는 테러리즘을 종식시키기 위해 정규군을 투입했다. 그들은 나홀로 병력으로 저들과 맞섰다.부시가 정규군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이곳저곳을 공격해 들어갔지만,전투의 불똥은 오히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사투로 번져 버렸다.
9·11 뉴욕참사는 전투의 의미마저 바꿔 놓았다.중세기 전쟁만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전쟁의 도가 있었다.
편제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전투들이었지만,그래도 전투에는 서로에게 묵인되는 '전쟁윤리' 같은 것들이 있었다.
1차세계대전도 그랬고,2차세계대전에서도 그랬다.
1차세계대전은 대규모의 군인들이 투입된 거대한 병력 소모전이며 정적인 전쟁이었다.
2차세계대전 역시 대규모 병력과 화력이 투입된 전술적 국지전으로서 피아가 맞부닥치는 전선만큼은 분명했다.
월남전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대규모 병력이 아니라 소규모 게릴라들의 위력이 드러난 전쟁이 월남전이었다.
미국의 대규모 병력들도 견디지 못하고 고배를 맛보게 만든 것이 바로 월남의 게릴라전이었다.
게릴라전 역시 싸워야 될 적군과,싸울 수 있는 전선을 중심으로 한 전술전이다.
이에 비해 '나홀로 테러전'은 모든 곳이 전선이며,모든 사람이 적군인 전투이다.
필요하면 그 어디라도,그 누구에게라도,그 언제라도 펼칠 수 있는 무차별 병법이 바로 나홀로 테러전이다.
살아 남는 것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전투가 정규전이라면,죽을 것을 전제로 벌이는 전투가 나홀로 테러전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무기는 피와 몸뿐이다"라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절규처럼,신념이라는 화약에 불을 붙여 몸이라는 무기를 폭파시키는 전투가 테러전이다.
목숨보다 신념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전투가 바로 테러전이기에,테러는 범죄의 한 유형이 아니라 효과적인 전투의 한 방법이라는 것이 저들의 병법이다.
나 홀로 전투로서의 테러는 9·11 뉴욕 무역센터 참사에서 보았듯이 전투치고는 값이 저렴한 경제전이다.
전투기 한대를 사려면 수십억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나홀로 자폭수에게는 가족위로금으로 1천만원정도만 주면 된다.
탱크에 탑재하는 폭탄 한발은 수백만원의 고가품이지만,단독병이 지닐 무기라고 해봐야 20만원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테러전은 최첨단 영상매체를 활용하는 고도의 속보전이기도 하다.
적국의 매스 미디어를 보조무기로 활용하는 테러전은 시민들을 무한대의 정신적 공황으로 빠뜨려 놓기에 충분하다.
사회 이곳저곳 모든 것이 전선이며,모든 것이 두려움들로 돌변하기에 심리전으로서의 테러를 능가할 무기도 적은 편이다.
이런 나홀로 단독전투가 이스라엘에서 매일같이 터지고 있다.
이번 중동의 나홀로 자폭병들은 태평양 전쟁때 산화한 일본의 가미가제와도 다르다.
가미가제가 군의 명령에 따랐다면,나홀로 자폭전사는 양심을 따른다.
열사가 되는 것이다.
저들이 종교로 무장했다면,그들도 신앙으로 무장한다.
그 어떤 무기도 신념이나 신앙과 싸워 끝내 이겨본 적이 없다.
이스라엘의 샤론이 제 아무리 덩치 큰 탱크를 앞세우고 그들을 유린해도,팔레스타인 소년병 그들에게는 그저 한마리의 풀벌레일 뿐이다.
미국은 그 어떤 국가와도 전쟁을 벌일 수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강대국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병법마저 미국식으로 강요하며 전투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은 영원히 나홀로 단독테러병들의 시달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그들의 침투를 차단하기 위해 세계 이곳 저곳에 나가 있는 모든 시민들을 무한정 무제한으로 단속하기는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이제 남은 해답은 한가지,평화와 평화교육이어야 한다.
그 평화를 위해 무기와 탄약,그리고 증오를 걷어내지 않으면,평화는 길을 잃고 영원히 미아가 될 뿐이다.
joh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