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적 경영의 뿌리찾기 .. 朱尤進 <서울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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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방송국이 소설 '상도'를 극화했던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됐다.
드라마에 나오는 많은 부분이 흥행 위주로 창작됐겠지만,임상옥이라는 인물이 조선 순조 때 인물이고 거상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기업사에서 잊혀져 있던 주요 인물이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소개된 것은 경영학계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상도'에서 우리는 경영에 관한 많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 교훈이 외국인이 아닌 우리 선조로부터 유래됐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 큰 감명을 준다.
상도 드라마에 '상업이란 이(利)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義)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상업을 하는데 있어 임상옥은 이익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했다.
그는 한 여인을 돕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몽땅 포기하기도 한다.
돈은 사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돈을 좇아 가면 오히려 큰 돈을 벌지 못한다.
때문에 큰 기업가는 이보다는 의를 추구해야 한다.
현대 경영학에서도 회사 이익을 직접적으로 추구하기보다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기업이 결과적으로 이익을 낸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고객을 위해 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정성이 결실을 봐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돈은 자연히 따라 온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이러한 정성을 '사랑의 수고'라고 했으며,소비자들은 이러한 '수고'를 제품에서 느끼게 된다고 했다.
최근 우리 벤처 환경을 봐도 이 말이 진리인 것을 알 수 있다.
돈을 추구해 '머니게임'에 열중한 벤처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기술력을 꾸준히 키워온 벤처들은 시장에서 장기적인 승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깨달은 또 하나의 진리는 이생이사(二生二死),즉 같이 죽거나 같이 산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출혈경쟁을 야기시켜 업계 전체를 부실하게 만든다.
수많은 국내 건설회사들이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난 이유는 원가 이하의 입찰경쟁 때문이었다.
우리는 경쟁을 하되 상대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상대를 죽이는 과정에서 나도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혈경쟁을 자제한다는 것이 담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쟁이라는 척도를 볼 때 한 끝엔 출혈경쟁 있고 반대 끝에는 담합행위가 있다.
출혈경쟁을 하는 기업은 어리석은 기업이고,담합하는 기업은 부도덕한 기업이다.
상업의 정도(正道)는 이 양극단 사이에 존재할 것이다.
경쟁을 하되 서로에게 적정한 마진을 보장할 수 있는 상생의 구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상업의 정도인 것이다.
끝으로 우리 조상들이 가장 강조했던 덕목은 역시 '신뢰'였다.
임상옥을 배출한 의주 상인들은 고객을 속이거나,거래처의 돈을 떼어 먹거나,주인의 돈을 훔치는 상인은 영원히 파문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제재는 법적 제재보다 더 무서웠다.
형벌은 형량을 채우면 그만이지만,파문은 평생 지속됐기 때문이다.
신뢰(Trust)는 서구에서도 중요시하는 덕목이다.
왜냐하면 기업활동의 상당부분이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어 조치인데,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이러한 불필요한 활동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버클리대의 윌리엄슨 교수는 이러한 활동에 드는 비용을 '거래비용'이라고 했는데,신뢰가 높은 환경에서는 거래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전통적인 상도가 무너지면서 거래 비용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구두 약속만으로 신의를 지킨다는 것은 옛말이 되어 버렸고,계약서가 있어도 안심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기업은 끊임없이 외국기술과 경영기법을 습득해야 하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영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기업의 근본이 되는 경영철학에 있어 서구의 것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많은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
전통 상도에서 발견한 선조들의 지혜를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한국적 경영의 뿌리를 찾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wchu@car123.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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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