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거동이 불편한 영국 노인 50여명을 태운 관광버스가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프랑스 땅에 발을 디딘 이들의 방문 목적은 단순 관광여행이 아니다.


백내장과 무릎 관절 수술 및 치료를 받고자 도버해협을 건너 온 환자들이다.


심각한 공공의료시설 낙후병을 앓고 있는 영국 정부가 올해 초 자국 환자들이 이웃 국가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영국의 열악한 의료시설 환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첫 진료에서 수술을 받기까지 평균 18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지난 2월 집계된 국립병원 수술 대기 환자수는 1백만명이 넘는다.


환자 수용 능력이 이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병원시설 낙후도 문제지만 의료인력 부족도 한 몫 했다.


담당 의료진이 없어 환자를 받으려 해도 받을 수 없다.


공공의료시설 문제가 마침내 국민 건강 위협 수위에 달하자 최근 토니 블레어 정부는 독일 스페인 의사와 간호사를 포츠머스 공립 종합병원에 배치했다.


조만간 호주와 필리핀 등 영어사용 국가 외국의료진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현재 프랑스와 독일에는 2백여명의 영국 환자들이 분산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현지 병원 치료비와 교통비는 공공보건청(NHS)과 의료보험에서 지불한다.


앞으로 외국 이동 치료 환자수가 더욱 늘어날 전망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 이에 필요한 예산도 책정하지 못한 상태다.


국내 사설의료기관보다 외국 공영시설에 환자를 위탁하는 게 훨씬 경제적이란 설명뿐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질병 치료기회를 갖게 된 환자 자신과 그 가족들이야 정부의 이번 조치가 반갑기만 하지만 일반 여론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야당은 국가적 수치라며 대정부 비난 강도를 높이고 있다.


1997년 블레어 총리는 공공보건 예산 확대를 약속했으나 그의 집권 첫 3년간 의료예산은 지난 20년을 통틀어 최저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환자 수출'비용을 국내 국공립병원시설 개선에 충당하는 게 장기적 대안이라는 제안도 있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