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 사업을 두고 국민여론이 나쁘다. F-15 전투기가 무엇이고,라팔이 무언지 산골 할머니들도 알 만큼 FX 사업은 '국민의 사업'이 돼 버렸다. 이를 두고 행정부 일각에서는 공연히 안보사업을 공개해 정치적 부담만 커지게 됐다고 후회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율곡사업으로 불거진 비리의혹 때문에 공개하지 않으면 안될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밀사항'이라고 쉬쉬하며 진행해 오던 무기 구매사업이 온 국민이 알게 돼 골치깨나 아프지만,그래도 비판세력이 있기에 국방부는 협상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론은 미국의 F-15 전투기에 대해 불만이 많을까? 첫째,전투기를 잘 모르는 국민들이라도 미국의 F-15,프랑스의 라팔,유럽의 유러파이터,그리고 러시아의 수호이 중 F-15 전투기가 가장 오래된 전투기라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F-15 전투기가 1974년에 개발됐지만,FX 사업에 입찰한 전투기는 1988년형이기 때문에 여타 기종과 성능면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생산라인을 폐쇄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더욱 모호하다. 미국은 F-15를 2030년까지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 전투기가 첨단전투기라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은 전투기 운영 시스템을 하이 로(High-Low) 개념으로 운용한다. 따라서 장차 생산될 F-22 전투기가 하이개념에 속하는 것이고,F-15는 로 개념으로 그 자리를 메우게 돼 있다. 단종(斷種)될 F-15 전투기는 원래 맥도널드 더글러스(Mcdonald Douglas)사 제품이었다. 그런데 보잉(Boeing)사와 합병하다 보니 보잉사 제품이 돼 버렸는데,한국이 마지막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어서 만약 한국이 구매하지 않는다면 생산라인을 폐쇄할 상황이다. 따라서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F-15 전투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홍보가 잘못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민심은 천심'이라고 '상식이 진리'라는 사실을 경시하고 있다. 되묻는다면 F-15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전투기라면 이토록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도 선택하려 하겠는가? 차라리 '한·미 동맹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면 더 설득력이 있을지 모른다. 둘째,항공산업 발전의 장기적 안목이 결여돼 있다. 어떤 무기체계든 제대로 된 협상을 하려면 이번엔 40대밖에 구매하지 않지만,다음 사업을 상정해 놓고 협상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차차세대 전투기에 대한 그림도 그리지 않고 협상을 하니 당연히 협상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더 있겠는가? 돈이 많이 들어 그렇지,적정규모의 전투기 전력을 유지하려면 2010년 이후에도 약 3백대의 전투기를 교체해야 한다. FX 사업 협상에서 어떤 기종이 결정되든 차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연계를 하게 되면 이 다음의 결정요건은 공동개발이 되기 쉽다. 그러면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항공산업의 토대를 빠르게 다지게 된다. 한국이 FX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낙후된 방위산업의 기술력을 높이고,21세기 첨단제조산업인 항공산업에 국제적으로 공동참여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비단 안보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셋째,비싼 가격이다. 원래 1백20대를 계획했다가 IMF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40대까지 밀려버린 FX 사업에 왜 하필이면 프랑스의 라팔보다 무려 3억5천만달러나 비싼 F-15를 선정하려 하는지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다 보니 '한·미 관계에 눌려 어쩔 수 없이 F-15로 결정되는구나'라는 인식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어차피 40대의 FX 사업 이후에도 차차세대 전투기 계획을 실행에 옮겨야 하니까 미래의 계획과 FX 사업을 연계시키기 위해서도 FX 사업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다소나마 공군전력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지만 북한을 주적이라 상정할 경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F-16에 장착한 무기체계만으로도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FX 사업은 항공산업 발전의 토대가 돼야 한다. kmkim@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