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연구비지원, 꼬리표 없어야..李榮善 <연세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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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이공계 학술잡지(SCI 등재)에 발표한 논문 수가 세계 대학 중 40위를 기록했으며,연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1백60위권이라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정도의 성과에 우리가 만족해야 할까? 한국의 국민총생산(GNP) 규모가 세계 1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 하겠다.
오늘날의 지식기반사회에서 국제경쟁력은 지식생산력에 달려 있다.
그런데 지식은 주로 대학들에 의해 생산되어 진다.
따라서 각 대학 교수들이 어떤 질의 논문을 얼마만큼 생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 나라 경쟁력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대학의 연구실적은 제공되는 연구비의 규모와 큰 상관관계를 갖는다.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인력에 대한 인건비와 기자재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교육부 보고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하는 미국 하버드 대학의 2000년 한햇동안 연구비 수주액은 6천4백억원이었고,발표논문수는 9천2백18편이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한 서울대의 연구비는 1천4백85억원이었고 발표논문수는 2천5백89편이었다.
이를 분석해 보면 연구비 총액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논문 한건당 소요비용은 별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사회가 보다 많은 자원을 연구기능에 투여할 수 있다면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대학이 수주하는 연구비는 크게 두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윤 동기에 근거한 민간기업의 연구용역비와,정부와 같은 공적기관에 의해 제공되는 연구비이다.
물론 민간기업에 의해 제공되는 연구용역에 의해서도 학술논문이 생산될 수 있으나,기초학문의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것은 공적기관에 의해 제공되는 연구비이다.
대학의 연구 결과가 그 연구를 수행한 교수 또는 대학에만 이득을 주는 것이 아니라,온 사회에 이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경제학적으로는 소위 외부경제성이 있으므로) 정부가 학술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정부를 비롯한 공적기관의 연구비는 대학재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대학이 연구비를 수주해 올 경우 직접적으로 연구에 소요되는 예산만 받아 오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비용,예컨대 행정비용 공간비용 에너지비용 등을 함께 받아 오게 된다.
수주하는 대학에 따라 다르나 평균적으로 40% 내지 50%의 간접비를 받는 것이 관행이다.
그만큼 대학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우리나라 정부도 대학에 적지 않은 연구비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런데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정부는 대학에 연구비를 제공하면서 대학에 큰 시혜를 베푸는 듯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연구비에 대한 간접비용을 고작 10% 정도만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대학에 대해 정부가 제공하는 연구비에 대응하는 예산을 책정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립대학들이 재정을 등록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연구비에 대한 대응예산의 강요는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연구를 지원하라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주어진 예산을 갖고 가장 효율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대학을 선정해 연구비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 때 선발 기준이 돼야 할 것은 대학이 지닌 연구인력의 능력이어야 한다.
교육부의 'BK21사업'처럼 연구능력과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대학의 제도 개편을 조건으로 한다든지,과학기술부 등의 대형 연구과제처럼 대학이 제공하는 대응자금과 연결시키는 것은 효과적인 연구를 유도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위암의 원인을 규명하는 세계적 논문을 낸 충북대 배석철 교수가 이런 대형 연구비 수주에서 번번이 탈락돼 자신의 집을 팔아 연구비를 충당했다는 사실은 이런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연구지원은 바로 지식생산력과 직결'된다는 생각과,'꼬리표 없는 연구비'지원이 대학과 이 나라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yslee@yonsei.ac.kr